대만 대선을 하루 앞두고 천수이벤(陳水扁) 총통과 뤼슈렌(呂秀蓮) 부총통이 총격을 입는 사건이 발생해 대만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대만 당국은 빠르면 선거당일인 20일 초보적인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총격 사건이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대만은 물론 전세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국가가 있다. 중국과 미국이다.
물론 중국 당국은 별다른 논평없이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밝히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사건 발생 6시간만에 간략하게 보도하기만 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이상하리만큼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내심으로는 이번 사건이 대선에 미칠 영향 분석에 분주해있을 듯 하다. 미국은 “명백한 암살시도”라며 강력 비난했다.
중국과 미국에게 있어 대만 문제는 어느 다른 문제보다도 양국의 대립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움직임에 대해서는 국가 정체성이 달려 있는 문제이니만큼 경제 건설 10년 후퇴나 베이징 올림픽 무산까지도 각오한다는 강경한 태도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대만은 절대 포기하지 못할 지역이다.
***‘도광양회’서 ‘유소작위’로 변하는 中과 패권 놓지 않으려는 美**
이러한 대만문제에 대해 ‘대만은 해양과 대륙 제국의 화약고’라고 평가하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21세기 아시아패권쟁탈전’으로 묘사하고 있는 <홍군 VS 청군>(이장훈 지음, 삼인 펴냄)이 나왔다.
한국일보 초대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이후 현재는 국제문제 등에 관한 칼럼 집필과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의 초석을 다지며 21세기에도 전세계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상정하고 있는 도전자는 바로 ‘팍스 시니카’(중국에 의한 세계 평화)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라며 얘기를 풀어가고 있다.
1980년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가운데 “앞으로 50년간은 패권을 추구하지 말라”며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 : 칼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키우고 때를 기다린다) 전략이 21세기에 들어오며 '유소작위'(有所作爲 : 필요한 부분에서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로 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서 중국의 야심은 결국 미국의 이익과 서서히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21세기를 주도하기 위한 패권 쟁탈전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미간 다툼, 인정과 공존보다 대결방향으로 갈 가능성 높아”**
이러한 양국관계에 대해 대만, 중앙아시아, 일본, 위앤화 문제 및 경제, 군사력, 중국위협론, 미국내 강-온 대립시각 등 중-미간 굵직굵직한 구체적인 현안을 중심으로 그 이면을 면밀히 살펴가며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청군과 홍군의 대결”에서는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으로 불붙은 우주개발경쟁, 대륙과 해양 제국의 분쟁 출발점이 될 대만 독립문제, 아세안(ASEAN)을 둘러싼 중-미 갈등 등을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중국사람들의 이면심리에는 ‘중화주의’가 놓여 있다며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나라간 세력 다툼이 서로에 대한 인정과 공존보다는 대결의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부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는 미국이 추진하는 우주패권 지키기 전략과 미사일방어체제구축, 동북아전력의 재편 방향, 대만 사수, 일본,호주,인도 등을 통한 우회 견제 등의 군사전략 등을 통해 미국의 대중국정책이 어떤 관점에서 마련되고 집행되는지를 해부했다.
한편 이 부분에서 저자는 중국의 ‘야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라는 면에 치중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미국의 독자적인 정책에 대한 중국의 반응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2부에서는 또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중국의 대응,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쟁탈전, 위앤화와 달러화로 대표되는 양국의 경제전쟁을 다루기도 했다. 특히 중앙아시아에 처음으로 미군 기지를 설치하는 등 석유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에너지를 지배, 통제하려고 하는 미국과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맞서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티벳을 포함하는 현대판 실크로드 전략을 짜고 있는 중국간의 중앙아시아 패권 전략이 흥미롭게 서술돼 있다.
***대중국 강경파인 ‘블루팀’의 실체 구체적으로 분석**
3부 “‘팍스 시니카’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는 중국의 중화주의와 이를 주도하는 새로운 공산당, 그리고 군사경제대국에서 정치외교대국으로 가려는 중국의,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전략을 분석했다. 저자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전략으로 내세운 것으로 첫째 부족한 군사력을 집중하는 것, 둘째 다른 지역은 경제력을 무기로 공략하는 것, 셋째 내륙에 인접한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등을 꼽았다.
4부 “중국 공격의 돌격대 블루팀”에서는 대중국 강경파인 블루팀과 힘에 의한 ‘미국 제국’을 추진해 온 신보수주의자의 중국에 대한 시각 등을 분석했다. 블루팀이란 이른바 네오콘과 부분적으로 겹치면서도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주의 정책 집단을 일컫는데 저자는 자체적인 자료와 시각으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강경파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회, 행정부, 각종 연구기관, 언론사 등에 포진한 이들 블루팀이 중국 공산 정권의 타도라는 목표아래 활동하고 있는 양상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저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전, 미국 역대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부시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블루팀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어떻게 구체화되고 정책적으로 실현되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한편 책 중간중간에는 가장 최근에 보도됐던 시효성 있는 기사들을 삽입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체 맥락을 강조하다 현시대의 강조점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기도 하다.
***“‘양다리 걸치기’, 용중용미 전략 마련해야”**
5부에 해당하는 ‘에필로그’에서는 이러한 두 강대국의 각축을 우리는 어떤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며, 우리의 국가적 생존 전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접근전략은 일종의 ‘양다리 걸치기’, 즉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과도 단절하지 않는 ‘용중용미’(用中用美)를 강조하고 있다.
박노자 교수는 현 한반도 위기 상황의 원인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이라고 보면서 “지금 동아시아에서 형성되고 있는 긴장감은 1백여넌 전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은 것 같다”며 “국력과 야심이 점점 커져가는 신흥 도전자 중국에 대해 기존의 패권 국가인 미국이 ‘은근한 포위 전략’을 쓰는 듯하기도 하고, 잘못하다가는 한반도가 중-미 갈등의 무대가 될 소지가 없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상황에서 저자는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자문해 볼 때 “한국의 선택은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중미 관계가 실질적인 갈등 관계, 혹은 분쟁의 관계로 치달을 경우에는 한국은 동맹이라는 구조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이 매우 크며, 불개입 또는 잠정 중립이라는 제3의 대안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인 제약을 제쳐둔다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와 지속적인 우호를 강조하며 그때그때 한국의 이익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장해 주는 측을 선택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전략에는 한국 정부가 탁월한 외교력과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현 시점의 정세 속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온 정책과 외교력을 생각해 본다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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