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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할 곳도, 전투할 상대도 없다"더니...

<기자의 눈> 존재 않는 '안전지대' 찾지말고 파병철회해야

이라크 침공 1주년인 20일을 앞두고 최근 10여일 사이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라크관련 정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열차테러공격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스페인군 철수를 결정했으며, 중남미 국가 온두라스도 철군을 발표했다. 한국 역시 "파병원칙에는 변함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주둔지역 변경을 발표했다.

우리정부가 파병지역을 변경된 이유인즉 "키르쿠크 치안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미군이 공세작전의 필요성으로 공동주둔과 무기 증강을 요구, 이를 거부하는 대신 보다 안전한 지역에서의 주둔을 제안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전투할 상대가 없다"더니...**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근본적 의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 정부가 파병을 결정할 때와 비교해 지금이 특별히 더 위험해졌나라는 의문이다.

스페인에서의 테러공격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테러공포에 떨고 있다는 점에서는 당시보다 위험의 농도가 높아졌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라크 현지는 정부가 파병을 결정할 때부터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파병 결정 당시 이미 키르쿠크지역으로 저항세력이 몰려들고 있고 쿠르드족의 자치권 요구로 이 지역에서의 종파간, 민족간 분쟁 위험성이 높다는 점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장인즉 "키르쿠크는 더없이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노무현대통령 같은 경우는 지난달 28일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파병과 관련, "한국군이 가서 전투할 곳이 없으며 전투할 상대도 없다. 방어가 중요하다. 이른바 전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정부가 서둘러 입장을 바꾸니, 파병결정 당시 정부는 왜 그렇게 ‘쇠귀에 경읽기’였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에 따른 파병에만 급급해 상황을 '고의로' 호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상황을 오판했던 것인지 국방부는 해명해야 한다. 물론 국방부는 이에 대해 지금에서야 “종족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애써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듣기에도 더없이 궁색하다.

***한국군, 스페인 철군 ‘땜방’인가**

하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로는 한국군 새 파병 지역으로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지역이 이라크 중남부의 나자프 등 몇몇 지역이다. 나자프 등은 키르쿠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나자프는 현재 스페인군 1천3백명이 폴란드사단에 배속돼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바그다드 테러의 여파로 스페인의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 집권한 사회노동당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 당선자는 한국정부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며 주장하고 있는 나자프에서 오는 6월말까지 스페인군을 철군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군의 파병지역 변경과 스페인의 철군. 그리고 스페인 주둔지로의 한국군 파병.

상황은 절묘하게 떨어지고 있다. 한-미가 파병지역 변경을 합의한 시점도 그렇고 새로운 파병지역으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는 지역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키르쿠크 치안 불안 악화와 미군의 공동주둔 요구 이외에도 좀 과장한다면 스페인군 철수에 따른 ‘땜빵식’ 메우기 의혹도 지우기 어렵다.

***나자프서만 스페인군 11명 사망**

그렇다면 과연 나자프가 한국군이 파병지역으로 선택할 지역일 정도로 상대적으로 안전한지 한번 살펴보자.

한 예로 스페인군은 지난해 8월 나자프에 주둔한 이후 지금까지 정보요원 7명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숨졌다.

게다가 나자프는 시아파의 대표적 성지다. 최근에는 수니파와 시아파간 내전을 일으키려 한다는 저항세력의 편지가 발견된 데서도 알 수 있듯, 이 지역에서도 최근 수니파 저항세력의 공격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시아파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이 지역에서 자동소총과 수류탄 공격을 받은 바 있고, 지난달에도 AK-47 소총으로 무장한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또 이슬람 신도의 금요 대예배일을 맞아 한 시아파 지도자가 이 지역 사원에서 설교를 마친 직후 차량폭탄공격을 받아 80명이 숨지고 2백29명이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던 곳이 다름아닌 나자프인 것이다.

더욱이 반미감정은 대단해, 주민들은 "미군은 알리바바(도둑)"이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결코 키르쿠크보다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이라크에는 지금 '안전지대'가 없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안전지대' 찾을 게 아니라 파병 철회해야**

결론적으로 현 시점은 “파병원칙은 변함이 없다”며 존재하지도 않는 '안전지대'를 찾아 전전긍긍할 시점이 아니라, 파병정책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요컨대 파병 철회를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왜 스페인이 철군을 결정했는가를 다시 한번 곰곰이 되짚어봐야 한다. 스페인 철군에서, 현재 우리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라크 현지의 정세악화가 차지하는 부분은 오히려 경미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페인 국민은 지난주 발생한 열차테러공격을 받고 그동안 일관되게 철군을 주장해온 사회노동당의 손을 들어줬다. 그만큼 이라크 현지의 파병부대의 위험도 위험이지만, 파병으로 인해 본토의 안전이 치명적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무장저항세력의 공격은 이제 우리에게도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정부는 테러대책회의에서 내달 1일 개통되는 고속철이 테러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전긍긍할 정도다. 한국이 왜 이렇게 위험해졌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는 파병결정을 철회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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