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비슷한 추리닝,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아침부터 아이를 쫓아다니며 집안일을 해치우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버린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며시 눈을 감으면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어린 딸이 엄마를 부르며 운다. 누구 말마따나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데' 그는 늘 정신없이 쫓기고 지쳐있다. 그는 말한다. "때론 행복한데...어딘가 갇혀있는 것 같아요"
어느 날부터 빙의에 걸린 듯 다른 사람처럼 말하는 '지영'과 그가 상처 입을까 두려워 그 사실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남편 '대현', 1982년 봄에 태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로 2019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 '논란의 그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4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김도영 감독와 '김지영' 역의 배우 정유미, 남편 '정대현' 역을 맡은 배우 공유가 참석했다.
영화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김도영 감독은 "원작이 큰 화제가 됐고 많은 사랑을 받아서 연출할 때 어떻게 좋은 서사로 관객과 만날지를 고민했다"며 "사회적 의제, 원작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지영'이라는 인물의 또 다른 성장과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떤 인물을 특별히 나쁘게 그리거나 좋게 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가정, 화목해 보이는 가정 안에서도 그런 아픔이나 상처는 있으니까요. 그 그릇, 사회, 구조, 시스템, 문화, 관습 등 개인의 캐릭터에 상처받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드는 사회적 풍경들을 보여주는 데 조금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게 원작이 말하는 의도와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김 감독은 "단역, 조연 분들이 너무나도 섬세하고 정확하게 연기를 잘 해주셨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원작의 영화화가 결정됐다는 발표 후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영화 제작을 막아 달라'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주인공 '김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 배우를 향해 악플이 달렸다. "용기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기자의 말에 정유미 배우는 '공감'이라는 단어로 답했다.
"진짜 용기를 내야하는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그보다 저희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고 그분들께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유미 배우는 "이 영화로 (세상이)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이전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정 배우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만든 영화"라며 "진심이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편 '대현'역을 맡은 공유 배우는 "영화를 찍으면서 공감 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며 "촬영이 끝나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날 어떻게 키웠어'라고 뜬금없이 물었다"고 말했다.
"저는 처음에 이 시나리오를 읽고 제가 위로를 받은 것 같았어요. 가족 생각이 많이 났고요. 촬영하면서도 영화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분들도 각자의 기준과 관점에 따라 영화를 보시게 될 텐데,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제가 울컥하고 공감하고 위로했던 부분을 관객 분들도 충분히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서도 "'괜찮다, 더 좋아질거야'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지영이 어머니 보다는 지영이가, 지영이 보다는 지영이 딸 아영이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거라는 바람을 가지고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첫 관객이 되어 준 조남주 작가가 '이 영화로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과찬의 문자를 보내주셨다"며 "관객들의 마음에도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작보다 따뜻하고 속 시원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오는 2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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