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국 무기 과학자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자살 사건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를 겪은 후 지난 달 허튼경 보고서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던 토니 블레어 총리의 영국 정부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도청했다는 폭로가 나와 커다란 파문이 일고 있다.
***전 영국 장관, “영국 정부, 유엔서 스파이 활동”**
클레어 쇼트 전 영국 국제개발장관은 26일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지난해 이라크전 개전에 이르는 동안 유엔에서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쇼트 전 장관은 ‘영국 스파이들이 유엔 내에서 활동을 벌이도록 교육 받았나’라는 물음에 그는 “물론, 그렇다”며 스파이 활동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특별히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집무실이 목표대상이었다”며 “그당시 영국은 아난 사무총장으로부터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관직에 있을 당시 아난 사무총장의 대화 녹취록 일부분을 읽었다”며 “나는 아난 사무총장과 이라크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으며 사람들은 이 녹취록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와 내가 나눈 대화 내용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니 블레어 내각의 최장수 장관가운데 한 명이었던 쇼트 전 장관은 지난해 5월 이라크전에 반대하며 사임했다.
BBC 안보 담당 기자는 이와 관련해 “많은 유엔 관리들은 항상 자신들이 도청당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일을 하고 있다”면서도 “이러한 것이 용납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영 당국 사이의 불법 도청 폭로한 전 정보요원 무죄 판결 받기도**
한편 영국 정부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즉각적인 논평은 거부했지만 앞으로 미칠 파장은 결코 작을 것 같지가 않다.
특히 이번 폭로는 미국과 영국 정부 사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사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하는 불법 도청 정보가 오고가고 있다는 것을 폭로해 기소됐던 캐서린 건이 무죄 판결을 받은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영국 통신감청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 소속 통역 및 번역 요원이었던 캐서린은 지난해 3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미국 국가 안보국(NSA)가 유엔 안보리 이사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불법 도청 등 더러운 술책을 전개할 계획을 세웠으며 영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었다.
건이 폭로한 비밀 메모에 따르면 NSA는 안보리 소속 비동맹 국가들인 앙골라, 불가리아 등 6개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영국 정보기관이 은밀한 뒤조사를 실시해 이들의 동태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같은 폭로에 대해 당시 영국정부는 국가기밀 누설 행위라며 건을 즉각 해고하고 재판에 회부했었지만 이날 열린 공판에서 영국 검찰은 건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재판을 포기했고 영국 법원은 사건 기록을 남기기 위해 건의 국가 기밀 누설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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