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대상으로 공정무역 특강이 있었다. 공정무역은 원조 대신 거래를 통해 불평등한 무역구조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 세계적인 운동이다. 불평등한 무역구조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왜 자신들에게 선택권이 없는지 구조적인 이야기로 도입부를 시작했다. 더 빠르게, 더 싸게 생산해서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기업의 사례가 언급됐다.
수강생 중 1인의 질문. "공정무역을 하면 기업에게는 어떤 게 좋은가요?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인데 공정무역 거래방식으로 이윤을 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우리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윤 극대화로 생각한다. 경제학자들과 자본가들은 오래전부터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기업은 단기이익을 극대화하고 주주들에게 이익을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 기업의 운영을 위해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직원, 파트너, 소비자의 삶에 자신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이윤 극대화로 말하는 명제는 틀렸을 뿐 아니라, 기업이라는 조직을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의 역할에는 사회가 가진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인 비즈니스 운영과 사회를 지지하는 기둥 역할이 모두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기업 운영에 이윤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에게 왜 이윤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보자. 기업은 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에게 유익을 제공하는 주체다. 그 결과로 고객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이윤을 돌려준다.
이미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기업들은 사회와 사회구성원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자각하는 동시에, 미래에 투자를 고민한다. 1~2개의 기업이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유익함을 주지 못하면서 홀로 무한증식만을 시도할 때는 그 기업이 속한 시장생태계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다. 이윤만을 추구하면 오히려 이윤을 잃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는 거다. 기업도 이윤을 창출하는 시장생태계가 건강해야 지속적으로 이윤을 낼 수 있다.
이런 흐름으로 코카콜라, 유니레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인권경영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만들어왔다. 인권경영은 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에게 유익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그들의 인권보장을 추구한다. 이 이해관계자에는 직원도 포함이 되어있다.
대한민국의 기업들도 '인권경영'에 주목하고 있다. 작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향후 5년간의 인권 정책을 담은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확정했다. 이어 같은 달 국가인권위원회도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을 공표하며 인권경영 이행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도 인권경영 점수가 포함되었다. 올해 평가부터 배점이 확 높아진 사회적 가치 항목에 인권경영이 반영된 거다. 이에 국민연금공단,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들은 앞다투어 인권경영과 관련한 별도 의사결정 기구를 꾸리거나 자체 회사 내 인권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인권경영을 이행하고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오히려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되고 있다. 2018년 6월, 세계 5위 연기금인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이 인도네시아 열대림을 파괴하고 원주민 생활에 피해를 입힌 국내 모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 등은 기업의 재무적 관점을 볼 수 있는 재무제표와 함께 인권경영보고서도 비재무적 평가로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추후 비재무적 평가 영역 공시를 법제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업에게 이윤 추구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윤 추구와 사회적 가치의 추구에 균형을 고민해보자는 얘기다.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의 출현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기업은 투자 유치와 리스크 관리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권경영을 필수조건으로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은 필수다. 이런 흐름이 팍팍한 현재를 조금씩 개선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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