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사이의 교감이 뜨겁다. 양국 정상 모두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를 둘러싼 조사를 둘러싸고 곤혹스런 지경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블레어 총리를 윈스턴 처칠 경에 비유하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블레어 총리는 그동안 이라크전 전쟁 명분으로 강력하게 주장해오던 WMD를 이라크에서 발견하지 못했음을 공식적으로 시인해 영국내 논란은 더욱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부시, “블레어, 처칠과 비견될 양심적이고 훌륭한 지도자”**
부시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열린 윈스턴 처칠 경 기념 전시회 개관 연설에서 “올바르고 쉽지 않은 일을 하기로 한 블레어 총리의 결단 속에서 처칠의 정신을 본다”며 극찬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미-영 양국 사이의 우정과 공동의 목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양심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을 소유한 훌륭한 영국 지도자를 알게 된 특권을 누리게 됐다”며 블레어 총리에 대한 성찬을 이어갔다.
그는 이어 “세상을 구한 사람들에게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는 윈스턴 처칠편이었다”고 강조해 처칠에 비유되는 블레어 총리도 지금은 WMD 문제로 곤혹을 겪고 있지만 역사는 정당성을 부여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물론 블레어 총리가 역사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는다고 강조한 것은 같은 문제로 비판에 직면한 부시 대통령 자신도 역사가 면죄부를 부여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 된다.
***블레어, 반전시위대 “살인마” 야유로 연설 도중 정회**
이처럼 부시 대통령의 극찬을 받았지만 블레어 총리는 결국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데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블레어 총리는 4일 의회 연설을 통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관들이 본인과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사용할 준비가 돼 있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데 실패했다”고 시인했다고 AFP,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또 이라크 전쟁에 회의적인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용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에 관한 정보 문건의 중요 부분을 잘못 이해했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라크가 45분 내에 WMD를 배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지난 2002년 9월의 정보 문건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언급하지 않고 단지 전술무기만을 언급한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한편 이날 블레어 총리가 의회에서 연설하는 도중에는 방청석에 있던 반전 시위대들이 “살인자”, “더 이상 속임수를 쓰지 말라”며 야유와 함성을 질러 10분간 정회가 선포되고 총리 연설이 끊기기도 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영국 의회 진행과정이 중단된 경우는 지난 1988년 이후 처음이다.
***블레어, “이라크 전쟁 결정 전혀 부끄럽지 않아”**
하지만 블레어총리는 WMD 발견 실패를 인정하고 반전시위대들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결정한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는 또다시 강하게 옹호했다.
그는 “올바른 것을 한 것이고 영국과 영국군은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라크 전쟁 감행이 정당화될 수 있는 증거들로 실험실과 문서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라크의 불법 무기를 조사하기 위해 이라크로 들어간 이라크 서베이 그룹은 실험실과 기술, 문서 및 도표, 생화학 무기 및 핵무기 능력 등에 대해 은폐를 지시받았다는 과학자들의 증언 등을 확보했다”며 “이러한 것들은 유엔의 결의안을 여러차례 위반한 것”이라며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강변한 것이다.
***영국내 비판 거세, “이라크전, 수에즈전이후 영국외교정책 최대 실수”**
블레어 총리가 이렇게 강하게 항변하고 있지만 블레어 총리에 대한 영국내 비난의 목소리는 잦아들 것 같지 않다.
영국 국방정보국(DIS) 부서장 출신인 브라이언 존스는 4일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보기관 수장들은 이라크전쟁 이전에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이라크 군부가 지난 10년 동안 생화학무기를 사용 실험했다는 징후는 없었다”며 “내 판단으로는 DIS 정보 분석가들은 2002년 문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언이 봉쇄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해 3월 블레어 총리가 반전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려 하자 각료급이었던 하원지도자직을 사임했던 로빈 쿡 전 영국 외무장관도 인디펜던트 기고문을 통해 “이라크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협력해 이집트 수에즈 운하을 강탈하려 했던 지난 수에즈 전쟁이후 영국 외교 정책의 최대 실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은 유엔의 권위를 훼손했으며 영국을 유럽 주요 동맹국들과 분열시키고 제3세계, 특히 이슬람 국가들에서 영국의 위상을 실추시켰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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