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국의 '편안한' 외교 상대였던 남미지역이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파병요구 거부에 이어 연초부터 미국에 반하는 목소리를 잇따라 내,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을 당혹케 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개최되는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미주특별정상회담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자주' 목소리를 이끌고 있는 브라질-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의 이들 남미 국가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12일부터 미주특별정상회담, 미국 의도에서 빗나가**
미국은 이틀간 멕시코 북부도시 몬테레이에서 열리는 이번 미주특별정상회담에서 무역 문제와 일부 남미 국가들에 대한 제재를 주요의제로 삼으려 했으나 남미 국가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5년 1월까지 34개국 자유무역협정(FTAA)을 체결하는 동시에 남미의 부패 정권들을 미주특별정상회담 등의 지역 회담에서 가능한 배제하려 하는 것이 미국이 의도하고 있는 바이지만, 남미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있는 몇몇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이 제안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반면에 이들 국가들은 미국의 제안 대신 이번 회담에서도 과거 회담의 전통 주제인 빈곤, 경제사회 발전, 민주주의 등을 회담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미 국가의 한 고위 관리는 이와 관련 "미국의 제안에 대해 많은 반대가 있다"며 "정상회담은 빈곤을 줄이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에 관한 것이며 우리는 이같은 초점을 잃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AP 통신도 이와 관련 "미주특별정상회담이 매우 깊은 갈등 속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각국 장관들이 협정 초안에 관해 토론을 벌이고 있으나 회담 시작 하루 전인 11일까지도 여전히 몇몇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
***남미 부패 정권 제재하려는 미국 방안, 강한 반대 부딪쳐**
이같은 '자주' 남미를 이끌고 있는 국가는 단연 브라질. 무역 문제를 정상회담 핵심 의제로 삼으려는 미국의 의도에 반대하고 있는 브라질은 남미에서 가장 부패한 정권들을 제재하려는 미국의 제안에도 비판하고 나섰다.
조르지 발레로 미주특별정상회담의 베네수엘라 대사도 이와 관련 "미국의 제안은 분명하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어느 정부가 부패했는지를 누가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이러한 방법은 어느 특정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무역 문제에 관해서도 남미 국가들 사이에 반대 의견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남미 국가들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미국이 시행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경제 정책은 성장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한 반면 오히려 빈곤 수준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 주장과 관련해서도 많은 국가들은 "미국은 먼저 자국내 농업 보조금을 낮출 것"을 요구하며 반대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브라질, '외국인 혐오증 발로'인 미국의 지문 채취에 맞대응 **
남미에서의 반미 분위기 확산은 물론 최근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과 안보 조치와도 연관이 깊다. 미국은 최근 서방선진국을 제외한 브라질, 한국 등 개도국 및 중진국의 외국 방문객들에 대해 지문과 사진을 찍도록 결정하자, 발끈한 브라질은 모든 미국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조치를 하기로 응수한 것이다.
브라질은 당초 "미국의 정책은 절대적으로 야만적이고 인권과 인간의 존엄을 무시한 것이며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최악의 공포와 맞먹는 외국인 혐오증의 발로"라고 비판한 한 판사의 명령에 따라 미국인 지문 채취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12일부터는 브라질 정부는 공식적인 정부 정책으로 바꾸어 시행할 예정"이라고 브라질 글로보 TV가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브라질의 이같은 조치는 미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하는 미국 정부의 조치에 대응한 정책이다. 미국은 대부분 유럽 국가인 27개국 국민들에 대해서는 이같은 조치를 면제했지만 남미 국가들 대부분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미국 관리들은 이와 관련 "브라질의 조치는 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차별대우"로 여기고 있다고 AP 통신은 전했으나 브라질은 이는 미국 정책에 대한 보복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셀소 아모림 브라질 외무장관은 "미국의 안보 관련 우려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준법 여행자들의 권리까지 침해해선 안된다"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르헨의 친쿠바 정책과 좌경화 정책 관련 미 비판에 아르헨 '발끈' **
브라질에 이어 아르헨티나도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같은 미국과 아르헨티나간 갈등을 먼저 초래한 쪽은 미국이다. 로저 노리에가 미국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가 지난 주 "미국은 아르헨티나의 친쿠바 정책에 실망했으며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아르헨티나가 좌경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직접 부시 대통령과 이 문제와 논쟁을 벌이겠다"며 격분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총리도 이와 관련 "노리에가 발언은 부적절하고 무례한 것"이라며 "미국과의 현실주의적 동맹관계는 끝났고 90년대 카를로스 메넴 정권시절과 같이 미국에 맞춰 자동적으로 줄 서는 일은 이미 없어졌다"고 강력 비난했다.
***베네수엘라, "미국, 내정간섭말라"**
베네수엘라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보다도 더 미국에 공세적이다. 휴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멕시코로 출발하기 전날인 10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9일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 내용. 그는 이날 "차베스 대통령은 야권의 소환운동에 받아들여 그가 민주적 절차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것. 이 발언이 있기 전에도 미국 관리들은 지난 일주일간 여러차례에 걸쳐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남미의 민주 정부를 위협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이러한 미국의 경고에 결국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지 베네수엘라 사람들만이 신경쓸 일"이며 "베네수엘라는 자유롭고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라디오 방송 연설에서 "미국이 본인을 몰아내기 위해 야권과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몬테레이 정상회담장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미국에 '정면도전'했다.
사실 차베스 대통령과 미국 정부와의 관계는 계속해서 껄끄러운 상태였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베네수엘라는 그동안 미국의 '눈엣가시'인 쿠바 카스트로 대통령과 우호관계를 유지해 오고 미국이 지지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해오던 터라 미국은 지난 2002년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쿠데타 비난을 자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주요한 원유 공급 국가이기에 미국으로서는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처지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테러위협에 대한 남미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길 원하고 있으나, 이같은 남미 각국의 강한 비난 목소리에 미국의 의도가 얼마나 먹혀들어갈지 지켜 볼일이다. 미국의 이라크 파병요구에도 등을 돌렸던 남미가 잇따라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에 맞섬으로써 미국과 남미간 간극이 점점 깊어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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