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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는 중국인 아닌 대만인이다"

3.20 국민투표 앞두고 대만과 중국-미국간 긴장 고조

오는 3월20일 치러질 대만의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중국-대만, 미국-대만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는 대만의 독립성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천수이벤(陳水扁) 대만 총통은 중국이나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국민투표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자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는 미국은 대만 대표부 사무소 폐쇄로 대만을 압박하고 나서고 있으며, 중국 역시 '전쟁 불사' 입장을 밝히며 강력 경고하고 나서 양안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양안관계의 변화는 동북아시아의 안보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결코 강 건너 불일 수 없다.

***첸수이벤, 국민투표 강행 고수**

문제의 국민투표는‘대만의 주권이 외부세력으로부터 위협받을 경우 총통이 국민투표를 제안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국민투표법(公民投票法)이 지난달 31일 천수이벤 총통이 지난해 11월말 입법원에서 통과된 국민투표법안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1월2일부터 정식 발효됨으로써 법적 근거를 갖췄다.

법안은 총통이 국민투표를 제안할 수 있는 경우를 외부세력으로부터 대만이 위협받을 경우로만 한정했지만, 첸수이벤 총통은 오는 3월20일 대선때 ‘2천3백만 대만인들을 겨냥하고 있는 중국의 5백여기의 미사일’이 바로 외부세력의 위협이라는 주장하에 이를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예고해왔다.

이같은 천 총통의 입장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강경해지는 모습이다. 4일에도 천 총통은 “외부의 압력이 강하지만 3월20일 국민투표 강행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대만 연합보가 보도했다.

첸수이벤은 국민투표 실시를 위한 외교적 노력도 활발히 펴고 있다.

대만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정식으로 발효된 국민투표법안에 대한 세계 각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 일본, EU 등에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대만 자유신문(自由新聞)이 4일 보도했다. "대표단은 천수이벤 총통이 대만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양안관계의 현상유지정책을 변경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 대표단은 10일 출발하기에 앞서 오는 6일 최종 협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선적으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대표단은 가오잉마오(高英茂) 대만 외교부 차장이 직접 이끌고 갈 예정이다.

***미, “대만 대표부 폐쇄할 수도”**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반응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대만 정부는 오는 3월 20일의 국민투표는 독립을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번 국민투표가 독립투표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대만을 압박하기 위해 대만 내 2곳의 미국 무역 대표부 사무소 가운데 1곳을 폐쇄하는 등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대만 연합보가 5일 보도했다.

미국은 이번 국민투표 강행으로 대만해협이 군사충돌의 화약고로 변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기 위해 “대만에 대한 경고로 가오슝(高雄)의 무역 대표부 사무실을 폐쇄할 수 있다”고 국민당 출신 전 대만 외교부장인 장샤오옌(章孝嚴)이 지적했다.

미국은 대만과 단교한 뒤 지난 79년 대표부 역할을 하는 미국대만협회(AIT) 사무실을 대만에 개설했으며 현재 본부는 수도인 타이베이에, 지부는 가오슝에 두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현재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전략에서 이라크와 아프간, 대북 문제 , 경제문제 등에서 중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대만문제로 인해서 중국과 갈등 양상을 빚거나 대치하는 상황을 절대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만에 직접 친서를 보내 국민투표 강행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지난 달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대만의 독립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 입장을 지지하기도 했다.

***中, “대만 국민투표, 본토의 지하드(성전) 부추길 수도”**

대만의 국민투표 강행 움직임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측은 역시 중국 정부다.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장래 대만과의 통일을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크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달 31일 신년사를 통해 “어떤 형태로 이뤄지던 대만의 분리 움직임을 결단코 반대하며 누구도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하기 위한 방법을 사용하도록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장밍칭(張明淸) 부주임도 지난달 30일 “천수이벤 총통이 3월 대선에서 재선하기 위해 본토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부추길 수도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그는 이어 천 총통의 대선 전략이 “대만 동포들의 이해를 무시한 부도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또 출범한 지 1년이 되고 있는 후진타오 체제는 아직도 보수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만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대만 국민투표 강행이나 독립 움직임은 중국 분열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고 중국 주권의 포기로 인식되면서 공산당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이루어진 중국 군부 인사를 보더라도 아직 후진타오체제는 적어도 군부에서는 확실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언론들이 4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들의 측근들을 주요 군사 부문에 임명했으며 “이는 장쩌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당분간 권력을 이양할 계획이 없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만 야당, 무턱대고 국민투표 반대할 수도 없어**

한편 대만 제1야당의 총통선거 후보로 현재 여론조사에서 천 총통과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은 물론 지난 달 16일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대만의 현재상황 변화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다음 세대에 맡겨야 한다”며 천 총통의 국민투표안에 반대했다.

하지만 대만 야당도 대만인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반대만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상당수 대만인들이 국민투표에 찬성하고 대만인으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 독립에 강하게 반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롄잔 후보 진영 선거운동을 총지휘하는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은 “국민당과 친민당 진영의 양안정책은 양안의 안정과 대만의 주권”이라며 “현재 상황이 유지되면 대만의 독립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등 대만의 독립 가능성까지도 전망하기도 했다.

***WP, “대만인들 정체성 변화. 스스로 중국인 아닌 대만인으로 인식”**

이같은 대만 분위기는 물론 대만인들의 정서와 이어진 부분이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일 “대만인들은 점차 자신들을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으로 인식함에 따라 대만인들 가운데 중국과의 통일을 포기하고 독립국가 건설을 원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대만 연합보의 지난 10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만섬 거주자 가운데 62%가 자신을 대만인으로 여기고 있다고 답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9년에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는 단지 16%만이 자신을 대만인으로 응답했었다. 반면 중국인이라 답변한 사람은 1989년 52%에서 2003년 19%로 급락했다.

이같은 변화 이유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중국 군사 위협에 대만인들이 반감을 가지게 됐으며 대만 거주자 가운데 중국 본토와 연계된 사람들은 이미 노년층이 됐거나 사망한 사실을 꼽았다. 또한 대만인들이 대만의 민주 개혁에 관해 자부심을 갖게 됨에 따라 대만 역사를 중국의 시각이 아닌 대만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대만인들의 대만에 대한 자부심은 대만 방언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고 있다. 장개석 총통 시기에는 대만어는 교육이나 방송에서 전혀 쓰이지 못하게 강제했으나 이제는 대만 TV에서도 대만 방언이 자유롭게 나오고 있으며, 정치인들도 대만어로 유세를 하기 시작했다.

***대만 인구비율 ‘내성인’이 압도적**

이같은 변화는 인구구성 비율의 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대만 정부 공보실에 따르면 현재 총 인구의 압도적 다수인 98%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 가운데 약 85%가 국민당 정권이 대만으로 옮겨오기 이전에 이미 대만에 살고 있던 ‘내성인’들이다.

또한 대만의 정치학자인 천민차오 교수에 따르면 각료급 이상 정치인 가운데 대륙출신 대만인 비율이 1993년에는 45.5%에서 2001년에는 5%로 격감한 반면, 대만인 비율은 54.5%에서 95%로 급증했다. 물론 정권이 교체됨으로써 변화된 이유도 있지만 이같은 변화는 대만이 독립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또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WP는 또 “중국이나 미국, 대만은 모두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지만 대만의 현상유지 개념은 중국이나 미국의 현상유지 개념은 다르다”며 “대만인들은 점차 자신들이 이미 독립했으며 중국이나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새로운 헌법을 구성하는 데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 헌법 제정’도 국민투표 실시 배경 가운데 하나**

물론 대만 정부는 국민투표 실시 움직임이 독립 강행과는 다른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헌법에 대한 갈망도 바로 국민투표제를 도입하려는 근저로 꼽히고 있다.

중국정치 전공인 서진영 고려대 교수는 이와 관련,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독립을 뒷받침할 ‘대만 헌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 대만이 가지고 있는 헌법은 ‘중화민국헌법’으로 1947년 제정된 이래 현재까지 6번 수정을 거쳤지만 현재의 대만의 헌법이 의미하는 영토와 통치 범위는 대만과 대륙을 포함한 중국 전체이기에 현재의 헌법 테두리 하에서는 진정한 대만 독립을 이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도 바로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있는 대만이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양안관계의 불안은 한반도에서의 불안만큼이나 동북아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3월20일 실시되는 대만 대선에서 과연 또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지 여부와 함께 과연 대만이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할지 여부도 큰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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