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전망이다. 각종 먹을거리를 비롯해 의류와 침구, 벽지와 집안의 마감재, 화장품과 세제, 살충제와 플라스틱 제품, 전자제품, 의약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각종 화학물질이 인체에 심각한 해를 미친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
SBS가 3일 밤 11시 첫 방송하는 박정훈 PD의 <환경의 역습> 3부작은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특히 1부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신종 환경병인 '새 집 증후군(SHS·Sick House Syndrome)'을 본격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새 집에 이사 온 뒤, 집에만 오면 온 몸이 붉은 반점으로 뒤덮이고 심하게 부어올라 잠도 편히 자지 못하는 중3 민수와,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2년 전부터 심한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네 살배기 형래의 얘기는 화학물질에 오염된 실내공기 때문에 생기는 전형적인 '새 집 증후군'의 생생한 사례다. 방송은 실험을 통해 민수와 형래의 집 실내 공기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2배 이상 높게 나온 것을 고발한다.
민수 가족과 <환경의 역습> 제작진은 실내 공기를 바꿔주기 위해 환기장치를 설치하고, 형래 가족은 강남구에서 공기 좋은 관악산 부근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그 뒤 민수와 형래는 훨씬 상태가 호전됐다.
'새 집 증후군'은 보통 일정기간 환기를 하면 증세가 사라지지만 심한 경우 화학물질과민증(MCS·Multiple Chemical Sensitivity)으로 발전한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예일대 마크 컬렌 교수가 처음 발견한 MCS 환자는 샴푸나 세제, 책의 잉크 냄새만 맡아도 두드러기, 구토 등 이상 증세를 일으킨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단 발병하면 완치가 거의 불가능해 평생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방송은 일본과 미국 등 외국의 충격적인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경감심을 불러일으킨다. 남편의 서재 책 냄새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집안 구석구석을 얇은 은박지로 도배한 MCS에 걸린 40대 후반의 일본 여성, MCS에 걸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채 온갖 화학물질이 차단된 특수시설에서 30여 년째 생활하고 있는 70대 미국 여성 얘기는 충격적이다. 일본에서는 '새 집 증후군'과 비슷한 '새 학교 증후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이미 3~4년 전부터 소비자·환경단체들 위험 경고"**
이런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의 위험은 결코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이미 3~4년 전부터 소비자·환경단체들은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의 위험을 경고해 왔고, 아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새 집 증후군'이나 '새 학교 증후군'에 노출돼 고통을 호소해왔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빈번한 감기, 아토피성 피부염, 새 집으로 이사하거나 집 안에 새 물건을 들여놓은 후 발생하는 원인 모를 질병 등의 원인을 찾기 위해 1999년에 모인 환경정의시민연대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의 위험을 고발하고, 대책을 호소해 온 대표적인 단체이다.
이들의 3~4년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들은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책 마련에 소홀해 왔다. 1980년대부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유해화학물질의 위험에 대한 어머니들의 문제제기를 무시한 것이다.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어머니들은 지금도 홈페이지 게시판(ecoi.eco.or.kr)을 통해 각종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상담을 계속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모르쇠'로 일관할 때 아이와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도시 공기, 유해물질 섭취 실상도 고발**
2년 반 전 아파트를 사 집을 수리한 후, 본인은 기관지염이 생기고 부인과 아이들은 아토피성 피부염과 비염에 걸리는 일을 경험한 후 <환경의 역습>을 기획했다는 박 PD는 2부, 3부를 통해서도 도시 환경과 일상 속에서 섭취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고발의 목소리를 높일 예정이다.
2부 '우리는 왜 이 도시를 용서하는가'에서는 "배기가스에 자주 노출된 서울시의 노점상 31명을 대상으로 배기가스가 정자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8명이 정자의 운동성에 문제가 있었고, 7명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준치에 미달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자동차, 도로, 건물로 넘쳐나는 도시의 공기를 본격적으로 고발한다. 3부 '미래를 위한 행복의 조건'에서는 치아 아말감 충전재 안 수은의 유해성 논란을 비롯해 농약, 살충제, 식품 속 유해물질 등으로 학습장애를 호소하는 아이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박 PD는 1995년 비만의 문제를 처음 심층적으로 다룬 <육체와의 전쟁>을 시작으로, 자연분만 열풍을 불러온 <생명의 기적>(2000년 1월), 채식 식단의 필요성을 강조한 <잘 먹고 잘 사는 법> (2001년 1월) 등을 연출해 매번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석유 문명의 부산물인 생활속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박 PD의 문제제기가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을 비롯한 어머니들의 외로운 고발이 정부와 기업의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