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비스 회사를 옮길 수 있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1일부터 시행됐으나 SK텔레콤의 전산 오류와 사업자간 신경전으로 소비자들이 심한 불편과 혼란을 겪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요즘 TV광고 등에서 노골적으로 목격되는 SK텔레콤의 '역마케팅 행위'를 제재할 예정이라고 2일 밝혔으나, 전산 오류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일, 신청 6천여건 중 절반 가량만 이동**
정통부는 이동전화 번호이동성제도 시행 첫날인 "1일 총 6천1백12건의 번호이동 신청이 있었으나 이 중 3천67건만 완료되고 나머지 3천45건은 번호이동 인증실패 등의 전산 오류로 이동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2일 발표했다.
2일 오후 2시 현재도 계속 전산 오류 현상이 지속돼, KTF와 LG텔레콤은 "신청자의 약 40%만이 번호이동에 성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통부는 "이동 실패의 주요 원인은 SK텔레콤의 전산 시스템과 번호이동 전환처리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통부는 그러나 KTF나 LG텔레콤측 주장과는 달리 "SK텔레콤의 전산 오류가 고의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KTF와 LG텔레콤은 애초 전산 테스트에서 95% 이상의 성공률을 보이던 전산 승인 성공률이 1일 2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을 놓고, SK텔레콤이 고의로 전산 오류를 초래해 조직적으로 번호이동을 방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통부는 그러나 향후 전산 오류가 재발할 경우 제재 조치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어, KTF와 LG텔레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SK텔레콤, 역마케팅 의혹 곳곳에서 제기**
SK텔레콤의 역마케팅 의혹도 논란이 일고 있다.
"번호를 옮기면 많은 선물을 준다"는 KTF등의 TV광고에 대해 많은 선물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모든 선물을 문밖으로 내미는 노골적 '역광고'를 해온 SK텔레콤은 번호이동제가 실시된 1일 이같은 광고 심리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사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 때 'SK텔레콤 네트워크'라는 안내가 1초가량 먼저 나오는 '통화품질 실명제'라는 서비스를 전격 도입해, 소비자들을 당황케 했다.
SK텔레콤은 "번호이동성 제도가 도입되면서 011, 017 번호 사용자 중에서 다른 회사 가입자가 생기기 때문에, SK텔레콤 가입자에게만 'SK텔레콤 네트워크'라는 멘트를 넣어주는 것"이라고 도입배경을 설명했다. 서비스 주체를 실명으로 밝혀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기 위한 일종의 품질 책임경영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KTF와 LG텔레콤 등 경쟁사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자사 고객을 타사로 빼앗길 것을 막기 위해 소비자 편익을 도외시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한 SK텔레콤 가입자는 "전화 걸 때마다 나오는 멘트가 불쾌하다"면서 "KTF나 LG텔레콤으로 이동을 한 고객도 바로 어제까지 SK텔레콤 고객이었고 앞으로 SK텔레콤 고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어이없는 발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KTF와 LG텔레콤은 SK텔레콤이 월 평균 사용요금이 높은 가입자에 대해 노골적으로 전화를 걸어 번호이동을 막거나, 기존 가입자에게 "왜 서비스사를 옮기느냐" "번호이동을 하면 마일리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14일내에 돌아오면 가입비 없이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가입자의 번호이동을 막는 역마케팅 사례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정통부는 SK텔레콤이 실시한 역마케팅 행위를 조사를 통해서 강력 제재할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 SK텔레콤의 '통화품질인증제'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정통부, 유효경쟁체제 조성 포기하나**
이처럼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에 따른 잡음이 잇따르면서 정통부가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의 정책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번호이동성 제도란 기존 휴대전화 번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이동통신업체로 가입을 변경할 수 있는 제도다. SK텔레콤 가입자들은 1일부터 다른 이동통신업체로 가입을 변경할 수 있고, 오는 7월부터는 KTF 가입자들이, 내년 1월부터는 LG텔레콤 가입자들이 이동통신업체를 바꿀 수 있다.
정통부가 2003년 1월 SK텔레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번호이동성 제도를 도입하면서 6개월간의 시차를 적용하기로 한 것은, 이동통신 지배사업자인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을 낮추도록 유도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장관과 담당국장이 바뀐 후 정통부가 애초 내걸었던 유효경쟁체제 조성보다는 소비자 편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시차를 둔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의 목적이 불분명해졌다.
번호이동성 제도뿐 아니라 2004년부터 LG텔레콤과 KTF에 이어 SK텔레콤에 대해서도 '약정 할인제'를 허가한 것도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진대제 장관의 정통부가 이동통신서비스에 대한 유효경쟁체제 구축을 사실상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약정 할인요금제란 일정 기간에 일정 이상의 요금을 쓸 경우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사실상의 단말기보조금 혜택을 가리킨다. 이 제도로 소비자들은 별 부담 없이 이동통신서비스 회사를 옮겨 다닐 수 있게 됐고, 2004년부터 SK텔레콤에도 이 약정 할인제도를 허가함으로써 사실상 선발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간의 차별점이 없어졌다.
번호이동의 본래취지는 경쟁체제의 확립을 통한 소비자 이윤 확대이나, 업계는 자사이익의 확대와 방어라는 상반된 목적아래 치열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통부가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한 심판'으로서의 자기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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