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웹진 담談 9월호는 조선시대 일기자료에서 일본과의 무역과 대일관 등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확인해보고, 경제적 독립의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했다.
전근대시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통교와 침략, 통상과 약탈이 반복됐으며 통교와 통상이 단절되면 얼마 후에는 침략과 약탈이 일어났다.
임진왜란(壬辰倭亂)전에도, 조선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의 소요가 발단이 돼 조선과 일본의 교류가 단절돼 임진왜란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으며 긴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조선은 주변 이민족(異民族)을 제어해야 했고, 일본은 외국으로부터 필요한 물산을 확보해야하는 여건 때문에 임진왜란 종전 후 조선은 1609년 일본과 기유약조(己酉約條)를 맺어 다시 교류를 이어가게 된다.
경제적인 이유로 조선과 교류 재개가 필요한 일본은 조선에 좀 더 많은 것, 좀 더 품질이 좋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왜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조선의 백성들에게, 조선과 일본이 교류하기 위해 필요했던 물자인 왜공(倭供)을 충당하는 것은 매우 버거운 일이었다.
조선 중기 문인인 김령은 왜공을 마련하기 위해 겪는 백성들의 고초에 대한 동정과 왜공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을 수탈하는 관리에 대한 비판을 문중일기인 ‘계암일록(溪巖日錄)’에 기록하고 있다.
당시 조선은 왜란으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된 일본과 교류를 맺어야 할 만큼 주변 이민족들로부터 큰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북쪽의 여진족이 가장 큰 위협이었다.
조선의 변경 지역은 여진의 여러 부족들의 전장(戰場)이 되어버렸으며, 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한 건주여진은 후금(後金)을 세우고 조선을 침략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당시 조선의 식자들은 일본의 재침을 두려해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1627년 정묘호란을 겪은 조선에, 일본은 접대수준의 격상과 한양으로의 상경을 요구했고, 그동안 조선에서 중단했던 공목(公木)까지 요구하게 되며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직후 일본은 조선에게 통신사 파견과 인조의 어필을 요구한다.
조선은 남북으로 이민족들의 위협을 받고 있던 터라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두 번의 호란을 겪은 조선을 상대로, 일본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명분까지도 받아내게 된다.
이웃나라들로부터 받은 위협은 그대로 백성들에게 고통으로 전달되었으니, 전쟁의 참화와 수탈은 백성들의 몫이었다.
이후 안정을 찾은 조선은 일본의 부당한 요구행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상거래에서의 부당거래・부당이득, 왜관과 그 주변에서 벌어진 일본인의 각종 범위 행위, 조선에 대한 염탐 활동 등에 제재를 가한다.
그 영화 ‘조선명탐정2 : 사라진 놉의 딸’에서 볼 수 있는 왜관의 풍경과 영화 ‘나랏말ᄊᆞ미’에서 볼 수 있는 일본 승려들의 무리한 요구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기록에 근거한 창작이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는 특별한 화폐다.
은의 순도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던 일본에 조선은 인삼 수출을 거부했고, 이에 다급해진 일본은 조선과의 인삼무역을 위해 특별한 은을 주조하게 됐다.
인삼대왕고은이란 특별한 화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일본에 대해 조선 조정의 선택은 순도 낮은 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삼의 수출을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부당한 행위와 불평등한 교역에 대항해 과감한 정면 돌파 공격으로 얻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조선과 일본의 통상교역에 대한 역사, 왜관에 대한 자료들은‘스토리테마파크’창작소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 류 244권을 기반으로 4,872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조경란 편집장은 “인조대와 숙종대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결국 위정자들의 대외 정보력과 분석력, 나라의 힘이 외교관계의 관건으로 보이며 그 힘은 결국 백성들의 노고를 줄여주고 외부의 환란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는 힘이기도 하다”며, “한일교역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역사이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역사가 될 수 있도록 한일교역과 관련된 창작소재들이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역사 콘텐츠로 창작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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