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역에서 1,090명의 어린 소녀들이 끌려간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이 강제노역을 둘러싼 한일간의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 규모는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직접적인 동기가 된 미쓰비시의 3배에 달하는 규모여서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근로정신대시민연대는 지난 8일 전남대학 인문관 김남주 기념홀에서 일본 도야마 시에서 23년째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 투쟁을 하고있는 ‘강제연행·강제노동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연락회’(이하 연락회) 나카가와 미유키 사무국장을 초청, 후지코시 근로정신대의 실상과 그동안 투쟁의 경과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나카가와 국장은 “1996년 7월 1차 소송 때 도야마대학 신문부 학생들과 재판을 참관했는데, 원고 할머니들의 사연을 들으며 방청석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부터 후지코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나카가와 국장은 “피해 할머니들을 향한 단순한 동정심에서 싸움에 나선 것이 아니다. 강제징용에 대한 사죄와 배상 없이는 일본의 식민지배는 계속되는 바나 다를 바 없다. 근로정신대 투쟁은 내 자신을 위한 싸움이고, 일본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다”고 투쟁의 의미를 규정했다.
나카가와 국장은 일본 내 혐한 분위기 속에서 겪는 활동의 고충을 밝혀 청중들의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나카가와 국장은 “후지코시가 곧 도야마라 불릴 정도로 도야마 시민 대부분이 후지코시나 후지코시 관련 일터에 생업을 기대고 있어 근로정신대 투쟁을 보는 시선이 싸늘하다”며 “후지코시 앞에서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문전행동’ 시위에서도 도야마 시민이 아닌 외지의 지원자들이 집회를 이끌어 갈 수밖에 없으며 시위 때마다 우익 단체들의 방해 집회도 심각하다”며 투쟁 환경의 어려움을 소개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13세 때 끌려간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김정주 할머니(87)의 사연이 영상으로 소개돼 청중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김정주 할머니는 “언니가 미쓰비시로 끌려간 1년 후 자신도 일본 가면 언니도 만나고 공부도 계속할 수 있다는 일본인 여선생의 꾐에 빠져 후지코시에 갔다”고 당시를 기억하면서 “키가 작아 사과상자를 두 개나 포갠 발판에 올라서서 작업을 했다”고 후지코시의 고된 노동환경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회상했다.
언니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일본에 간 김정주 할머니는 일본에서 귀향한 1945년 11월에야 미스비시에서 기계를 다루다 손가락이 잘린 언니 김성주를 만날 수 있었다.
나카가와 국장은 아베정권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나카가와 국장은 “아베정권은 강제징용 배상으로 얽힌 한일관계를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비난하며 “고작 12살~13살 나이에 강제동원된 소녀들이 이제 90살을 넘기고 있다. 더 늦기전에 사죄와 사실규명, 그리고 배상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 말미에 나카가와 국장은 “후지코시 소송 원고 할머니들은 제2의 독립운동을 한다는 각오로 싸우고 있다. 한국 국민들도 뜨거운 열기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투쟁에 연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일제강점기 전쟁무기 생산공장이었던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일본법원 근로정신대 강제징용 소송은 1965년 한일협정권을 근거로 모두 패했다.
그러나 1심에 이어 지난 1월에 열린 2심 재판부인 서울 고법이 “후지코시는 한국 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씩을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따라 원고 측은 한국 내 후지코시 자산에 대한 강제처분 절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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