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한나라당총재가 15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불법 대선자금 모금과 관련, "내가 시켰다. 책임지고 감옥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곧바로 검찰에 출두, 이 시간 현재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이회창, 기자회견직후 검찰 출두**
이 전 총재는 기자회견 직후 이날 오전 10시40분경 대검에 출두해 민원실을 거쳐 7층 중앙수사부장실에서 안대희 중수부장과 5분간 면담을 가진 뒤, 곧바로 중수2과가 위치한 10층 조사실으로 자리를 옮겨 조사를 받고 있다. 이 전 총재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는 중수2과장 유재만 검사가 맡고 있다.
대검 공보관에 따르면, 이 전 총재는 안대희 중수부장과 5분간 면담하는 동안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 관련자들에 대해 선처를 바란다"고 당부했으며, 안 중수부장은 "총재께서도 모르시는 부분이 있으니까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재는 대검 청사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의 쇄도하는 질문에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검찰은 이 전 총재가 자진출두함에 따라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불법 대선자금 모금 경위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이 전총재 기자회견 내용대로 모금을 직접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 등에 따라 집중적으로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검찰은 또 16일에는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을 소환 조사해 5백억대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 과정과 당 차원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날 이 전 총재의 검찰 출두에는 한나라당 오세훈, 남경필, 심규철 의원 등이 동행했다.
***구속여부 최대 관심사**
이 전총재가 검찰에 전격출두함에 따라 이 전총재에 대한 구속 여부가 비상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 전총재 진술대로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이 전총재가 직접 지시했을 경우 현행법상 그에 대한 구속은 불가피해보인다. 정차자금법 위반이 확실하며, 앞서 구속한 이재현 한나라당 전 재정국장이나 노무현 캠프의 안희정씨 등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문제는 그러나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이럴 경우 대선에서 패한 야당 후보에 대한 '정치보복' 논란이 일 게 불을 보듯 훤하며, 비록 액수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노무현 대통령 또한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검찰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기도 저러기도 쉽지 않은 난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92년 대선때 정주영은 불구속기소**
대통령선거후 불법대선자금이 문제가 돼 야당후보에 대한 구속 여부가 현안이 됐던 대표적 사례는 지난 92년 대선직후의 고 정주영 국민당후보였다.
출마초기부터 '돈선거' 의혹을 샀던 당시 정주영 후보는 92년 대선막판인 그해 11월에 현대중공업이 선박수출대금 6백67억원을 비자금으로 불법 조성해 이 가운데 5백9억원을 대선운동에 불법전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법망에 걸려들었다.
검찰은 대선기간동안에는 선거개입 논란을 의식, 이병규 대표특보나 최수일 현대중공업사장 등 하부관련자들만 수배했을 뿐 정주영 후보에 대해서는 직접적 수사활동을 펴지 않았다.
검찰이 정주영 후보에 대한 소환영장을 발부한 것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자가 된 후인 다음해 1월14일의 일이다. 정 후보는 당일 검찰에 출두해 12시간 수사를 받았고, 그는 조사내내 "밑에서 알아서 자금을 조성해 사용한 것"이라며 자신의 직접 지시 사실을 부인했다.
검찰은 그러나 2월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죄(업무상 횡령)와 대통령선거법 위반죄 등을 적용해 정후보를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정대표의 혐의 내용 및 다른 관련자들과의 형평문제 등을 고려할 때 구속기소해야 마땅하나, 정 대표가 그동안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과 대통령후보로 출마한 야당대표이며, 고령이라는 점을 종합검토한 결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같은 불구속기소 결정이 나온 뒤 사흘 뒤인 그해 2월9일 정주영 당시 국민당대표는 정계은퇴로 화답했고, 결국 그후 재판에서 정대표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
***검찰의 고뇌**
92년 대선과 지금의 상황을 단순비교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무리다.
당시 정주영 후보의 경우 끝까지 자신의 불법개입 사실을 부인한 데다가, 당선자인 김영삼 후보진영도 정후보보다 많은 대선자금을 사용했으면 했지 적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주영 후보의 경우 고령인 데다가 경제개발연대의 역군이었다는 점도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회창 전총재 구속에 대해 선뜻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대목은 이 전총재 구속시 예상되는 정치적 파장 및 이에 따라 검찰수사에 부과될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단 검찰이 이회창 전총재에 대한 수사를 마치고 귀가시킨 뒤 구속여부를 신중히 검토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어, 검찰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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