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경찰한테 또 한번 속았어. 또..."
30일 저녁 1백29일째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격포에서 올라온 신모(60)씨는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수협 앞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하려던 부안 주민들도 아연실색했다. 30일 저녁 77개 중대 8천5백여명의 무장한 전·의경이 수협 앞과 부안읍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전경 전체1+2>
격포에서 자녀들과 어업에 종사하는 신모(60)씨는 경찰이 수협 앞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자 "어제(29일) 대규모 집회를 평화적으로 치르면 경찰 병력을 철수한다더니 또 정부와 경찰한테서 속았다"면서 "어제 집회 분위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사진 항의주민1+2>
전·의경들의 진압 과정에서 남편이 허리를 다쳐 양계장 관리를 혼자서 하고 있는 이모(49)씨도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며 "주민들이 이만큼 성의를 보여줬으면 정부도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격앙된 심정을 밝혔다.
***50여명 '무차별 연행' 잡음 가득**
전·의경들은 7시경부터 수협 앞으로 향하는 노란색 옷을 입은 주민들을 가로막고,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경우에는 2∼3인이 1조가 되어 연행을 시작했다. 남자들은 물론 여성, 노인 등 노약자에 대한 연행도 이루어졌다. 연행될 뻔한 고점석(50)씨는 "도대체 내가 구호를 외치기를 했나 왜 나를 잡아가려는 것이냐"며 "그냥 서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연행하고 연행이유를 밝히라고 요구해도 그냥 잡아간다"고 분노했다.
<사진 할머니 연행 1+2>
이런 무차별 연행 과정으로 인해 곳곳에서 잡음이 생겼다. 수협 앞 건너편 대형 슈퍼마켓 인도에 서 있던 주민들을 전·의경들이 연행하면서 일부 전·의경들이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 현장 지휘관이 서둘러 이를 수습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온 주민들이 강한 항의를 하기도 했다. 허모(47)씨는 "생필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왔다가 전·의경들한테 저지 당했다"면서 "차라리 통행금지를 하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가 사는 곳에서 인도도 제대로 못 걸어다니게 하는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갑갑하기만 하다"고 밝혔다.
슈퍼마켓 관계자는 "우리 마켓은 가족 단위로 오는데 이렇게 가게 앞을 전의경들이 막고 서 있으면서 사람들이 조금만 모였다하면 잡아가버리니 우릴 말려죽일 참이냐"며 "캠코더로 (전의경의 행동을) 다 찍어놓았으니 '사유재산침해'신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남자 연행 1+2+3>
수협 앞에서는 아이를 태우고 노란색 깃발을 매단 트럭을 운전하던 주민 1명이 아이와 함께 전·의경들에게 끌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전·의경들은 트럭이 수협 앞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 차 열쇠를 빼앗은 후 아버지를 강제로 운전석에서 끌어내려 연행했다. 이 전 과정을 캠코더로 촬영한 문정현 신부는 " 전·의경들은 아버지가 끌려가는 것을 본 남자아이가 울자 곧 그 아이도 같이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연행1+2+3+4>
***경찰 성희롱 주장, 50대 여성 "알몸 항의"**
30일 진압에서는 여경들이 여성들에 대한 진압과 연행을 맡았으나 이로 인해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었다. 오후 9시10분경 성모 병원 근처에서 여성 2명을 전·의경들이 연행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경찰 1명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상의 등을 탈의한 채 알몸으로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 여경+ 사진 아줌마>
2시간이 넘게 지속된 대치는 경찰의 진압으로 끝났지만, 이 상황을 지켜본 주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경찰차 밑에서 2시간가량 상의를 탈의한 채 알몸으로 '경찰의 사과'를 요구한 배모(52)씨는 "분명히 경찰 뒤편에서 사진을 찍던 경찰이 '저X들 팬티까지 벗겨버려. 한번 X해보게'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끝까지 찾아내서 기필코 사과를 받고 처벌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씨가 병원으로 실려간 뒤, 일부 주민들은 부안읍 서림 파출소에 이 '성희롱 사건'을 정식으로 고발했다.
***기자들도 "너무하는 거 아냐" 웅성웅성**
29일 주민들의 대규모 집회 취재를 위해 부안에 대거 내려온 KBS, MBC, YTN 등 방송사와 중앙 일간지 기자들도 경찰의 '무차별 연행'에 고개를 내저었다.
'무차별 연행' 과정에서 경찰들과 기자들 사이의 충돌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KBS 기자는 연행 과정을 촬영하다가 전·의경들이 기자와 카메라를 쳐 경찰에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KBS 기자의 항의에 경찰은 곧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항의KBS 1+2>
한 중앙 일간지 기자는 "경찰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무차별 연행'이었다"면서 "경찰이 스스로 주민과 갈등을 조장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어차피 대부분의 주민들은 내일 아침 훈방될 게 뻔하다"면서 "주민과 경찰 사이의 갈등의 골만 깊어지게 하는 이런 방식을 왜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장 경찰 지휘관, "연행 기준은 현장 지휘관이 판단해"**
대책위 김종성 집행위원장은 "29일의 평화적인 집회로 주민들은 당연히 오늘은 수협 앞에서 정상적으로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열 것으로 여겼다"면서 "수협 앞 촛불집회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책위 차원에서 통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주민들이 스스로 '평화적인 집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만큼 정부는 그런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계속 경찰의 '무차별 연행'을 촬영하던 문정현 신부도 "도대체 이런 식의 '경찰 계엄'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러면 이럴수록 주민들의 분노와 저항 의지만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무차별 연행'을 지시하던 현장 경찰 지휘관들은 '상부로부터 지시 받은 연행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부안에서 일몰 후 집회는 무조건 불법입니다. 그리고 '연행'의 기준은 현장에서 내가 결정합니다"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그 때 그가 지휘하던 1백여명으로 이루어진 전·의경들이 둘러싸고 진압하려던 현행범들은 수협 앞에서 1백미터 떨어져 있던 60대, 70대 할머니 세 사람이었다.
<사진 방송 경찰>
이 날 경찰의 무차별 연행으로 주민 4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대책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단 12월1일 1백30일째 촛불집회는 부안 성당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