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광복절 역사 투어 독립운동 성지 안동을 걷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광복절 역사 투어 독립운동 성지 안동을 걷다.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름도 영광도 없는 ‘아무개’ 그들의 독립운동과 삶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추모비ⓒ안동시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일 갈등은 심화되고있는 시점에서 독립운동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하며 맞는 74회 광복절을 맞아 한국독립운동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안동에서 역사투어를 실시한다.

한국독립운동사의 시작을 알린 것은 1894년에 일어난 갑오의병운동 이며 독립운동사 핵심 인물들을 배출했고 독립단체의 창립지, 활동지 그리고 의거지를 아우르는 독립운동의 성지가 바로 안동이다.

고고한 독립의 기상과 처절했던 그들의 시간이 현재에도 고스란히 녹아 흐르고 있는 안동. 광복 74주년을 맞아 이름도 영광도 없이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항일의 시간 속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무장 투쟁의 혼으로 타올랐던_임청각
▲ 일제가 독립운동의 혼을 끊기위해 관통 철도를 건설했던 임청각ⓒ안동시
임청각 내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이 쓴 현판과 나란히 독립유공자 증서가 빼곡하다.

전 재산을 정리해 의병항쟁을 지원하고 온 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석주 선생과 그의 가족이 걸어온 험난했던 독립운동의 혼이 배어있는 곳이 바로 임청각이다.

2009년 현충 시설로 지정된 임청각(보물 제182호)은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현재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제의 만행으로 중앙선 철도를 관통시켜 99칸의 가옥이 절반으로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임청각은 11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하고 무려 3대에 걸쳐 독립 투쟁에 나선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500년의 역사가 살아있는 독립운동가의 집, 임청각에선 오는 15일까지 무궁화 관련 소담길에 우리나라 토종 무궁화가 만개해 관람할 수 있다.

죽음으로 보여준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향산 이만도 선생의 향산고택
▲ 숭고한 죽음으로 우국충정을 보였던 이만도 선생의 향산고택 ⓒ안동시
향산고택은 의병장이자 자정 순국한 애국지사 향산 이만도 선생이 살았던 집이다.

일제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극렬한 저항이 단식으로 목숨을 끊는 자정 순국의 길이였다.

향산고택은 대를 이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며 향산 선생의 뜻을 이어 아들 이중업과 며느리 김락 또한 독립운동을 이어갔으며 김락은 서산 김흥락의 누이로 독립 만세 운동에 나섰다가 고문으로 두 눈을 잃었다.

김락의 언니인 김우락 여사가 임청각 석주 이상룡의 부인이였으며 당시 문중끼리 혼인으로, 서로 강하게 연결된 안동 독립운동의 집단성을 알 수 있으며 김락의 아들 이동흠 역시 대한광복회 활동으로 옥고를 치렀다.

3대 독립운동에 빛나는 향산고택은 도산면 토계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현재의 자리인 안막동에 옮겨졌다.

독립운동의 기둥, 협동학교를 세우다. 내앞 마을 그리고 경북독립운동기념관
▲ 일제가 고문의 흔적을 지우고 독립운동의 혼마져 가두기 위해 철제관에 넣어 매장했던 막난 권오설 선생의 묘소(발굴당시) ⓒ안동시
내앞은 천전(川前)의 한글 이름이며 내앞 사람들의 독립운동은 1894년 의병항쟁에서 광복까지 쉼이 없었으며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사람만 무려 20여 명이 넘는다.

특히 내앞에는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동 김동삼의 생가와 구국을 위한 인재를 길러낼, 새로운 길을 열었던 협동학교의 설립지, 가산서당은 현재 복원됐고 교사로 쓰였던 백하구려는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이끈 백하 김대락 선생의 집으로 현재도 잘 보존돼 있다.

내앞 경북독립기념관에는 6.10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막난 권오설 선생의 벌겋게 녹이 슨 철제관이 눈에 띈다.

일제는 고문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철관을 사용했고, 심지어는 열지 못하도록 발견당시 용접까지 되어있었다고 한다.

2008년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 당시 유족과 주민들은 “일제가 선생의 시신과 함께 혼까지 철관 안에 가두어 놓으려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1930년 옥사한 선생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사라는 이유로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2005년이 되어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