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유엔 직원들을 바그다드에서 철수시키려 하자 미국이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이를 묵살하고 철수 결정을 내린 사실이 드러났다. 이같은 유엔의 철수 결정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략 실패를 드러내는 것으로, 부시는 또 한번 외교적 좌절을 맛보게 됐다.
***파월 국무장관, 아난 사무총장에게 압력 행사**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아난 사무총장은 준전시상황에 가까운 이라크 사정에 대한 위기감과 유엔 직원들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로 유엔 직원들의 바그다드 철수를 명령하려 하자,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강하게 반대압력을 행사했다.
파월 국무장관은 아난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유엔의 철수는 이라크에 머물고 있는 일반 구호단체가 그들의 활동을 재고하도록 만들 것”이라면서 유엔 철수에 반대했다. 파월 국무장관은 이틀간에 걸쳐 빈번하게 아난 사무총장과 전화통화를 갖고 “유엔과 국제적십자사 등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면 이는 테러리스트들의 승리”라고 주장하면서 이들 단체가 계속 이라크에 머물 것을 요구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아난 사무총장은 이같은 파월의 압력에 대해“이전 72시간 동안 테러가 잇따른 결과, 이라크 정세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다"며 “더이상 유엔 직원의 희생을 감수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하지만 유엔은 미국의 압력을 완전히 거부하는 모양새는 취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유엔의 마리 오카베 대변인은 “본부와 신변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철수 결정을 내렸다”면서도 "이번 철수가 일시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 북부에서 활동하는 유엔 외국인 직원들과 이라크인 직원들은 계속 업무를 진행할 것”이라며 “현재 상황이 전면 철수를 의미하는 ‘위험도 5’의 단계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러나 이와 관련,“유엔의 철수 결정은 부시 행정부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미국, 파병약속 국가 동요 우려**
한편 국제적십자사는 이라크에서 전면철수를 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임을 밝혔으나, 파월 국무장관은 국제적십자사에게도 이라크에 머물 것을 강하게 촉구한 바 있어 국제적십자사의 이같은 결정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언론 보도에 대해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철수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며 직원들에 대한 안전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지지한다”며 “철수 결정을 내린 국제단체들에 대한 (미국의) 보복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유엔의 철수 결정으로 파병을 약속한 한국이나 이미 병력을 파병한 다른나라들의 동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앞으로 이들 국가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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