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 꼭지를 통해 소개된 음악들이 비록 꼭지의 제목만큼 혁명적인 노래는 아니었을지라도, 많은 음악인들이 세상을 향해 고백하고 터뜨리고 싶은 이야기를 애써 만들었다는 것만은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늘 세상에 대해 말하던 음악인들은 당연히 좀 더 급진적이고 원칙적인 저항과 비판의 노래를 불렀지만, 평소 자신들이 하던 음악과 다른 목소리를 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음악인들은 또한 당연히 자신의 스타일대로 세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때로는 모호하고 낮은 목소리도 있었을지라도, 그 또한 진심이었고 뜨거웠음을 꼭 알아주기 바란다.
저항과 비판은 획일적인 하나의 스타일로 구성되지 않고, 현실은 그보다 많은 파장과 그림자로 채워진다. 그리고 예술은 정답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진심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리는 개체의 묵묵한 도전이며 투신이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지난 5개월 동안 그 고독하고 헌신적인 고백이 무려 42곡이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희망을 노래하고, 절망하는 순간 앞에 솔직했던 노래들이 있었다. 참담한 분노를 폭발시키고, 우리 자신에게 거울을 들이댄 노래들이 있어, 2009년과 2010년 우리 안팎 풍경들은 개인으로부터 세상으로, 세상으로부터 개인으로 넓어지고 깊어지며 개인과 세상을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르지 않음을 일러주었다.
또한 한국의 대중음악이 사회적 맥락을 꾸준히 이어가면서도 천천히 어제와 다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럼에도 채 미치지 못했던 시선, 더욱 전복적이지 못했던 목소리는 오늘의 숙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연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황보령의 노래는 미리 정하기라도 한 듯 제목과 가사, 그리고 녹음 방식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의미심장하다. '다시 살아나'라고 질박하게 담담한 그녀의 노래는 오늘 우리 모두의 낙담과 절망과 좌절 앞에 적확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음으로 보아야 하고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앞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진난만할 수는 없다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가 반드시 살아 하늘을 안아야만 함을 확인시켜주는 노래만큼 연재의 마감과 첫봄의 시작에 어울리는 노래가 또 어디 있겠는가.
▲ <다시 살아나>는 살아있음에도 살아있다는 것의 진정성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가장 간접적이고도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다. ⓒ황보령 |
사실 이 노래는 지난 해 손꼽히는 걸작으로 호평 받았던 황보령의 3집에 이미 실린 적이 있다. 그러나 황보령은 자신의 진심을 노래하기 위해 어스름한 새벽녘, 기타 한 대와 녹음기 하나를 가지고 호숫가의 다리 아래에서 이 노래를 다시 불렀다.
그녀는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이 세상에 있는 우리는 얼마나 많이 깨어 있을까. 과연 깨어는 있을까. 제 생명의 고귀함만큼, 다른 개개인의 소중함, 한 생명의 귀중함, 파릇한 생명력의 놀라움을 느낄 수 없다면 죽어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라고 물었다. <다시 살아나>는 살아있음에도 살아있다는 것의 진정성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가장 간접적이고도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알겠지만 차가 지나가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사람의 마을 구석에서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 가수는 목 놓아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그 노래를 듣는다. 이미 소개된 41곡의 노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해도 뒤척이며 잠 못 든 이들은 꿈결처럼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잠수함의 토끼처럼, 날 선 군대의 진군나팔처럼 부른 노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뜨거운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울려 퍼질 것이다. 이제 메아리는 만인의 몫이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 이 꼭지를 일궈준 뮤지션들과 아껴 들어준 독자 분들에게, 그리고 애써준 <프레시안>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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