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터키 해변에서 유럽으로 건너 가려던 시리아 난민 어린이 쿠르디가 숨진 채 발견된 사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 지역 리오그란데 강가에서 또 한 장의 비극적인 장면이 목격됐다.
멕시코 일간 <라호르나다>의 사진 기자 훌리아 레두크에 의해 찍혀 26일(현지시간) 전세계 통신사에 전송된 이 사진엔 23개월 여자 아기와 아버지가 미국의 국경에서 1km 떨어진 멕시코 강가에 엎드린 채 숨진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다 물살에 휩쓸려 숨진 엘살바도르 출신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딸 발레리아로 밝혀졌다.
지난해만 283명 사망, 이민자 체포 급증
아버지가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티셔츠 안으로 아이를 품고 아이는 아빠의 목을 감싼 채 꼭 붙어서 숨진 모습은 전세계인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 줬다. 이들 부녀처럼 극적인 사진으로 포착되지만 않았을 뿐, 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필사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가려다가 숨진 사람들은 지난해에만 283명에 달한다.
국경의 사막과 강을 넘다 사망한 이민자의 사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유아 2명, 어린이 1명, 여성 1명이 리오그란데 계곡에서 발견됐다. 이달 초에는 애리조나 주로 넘어가는 소노란 사막에서 6세 인도 어린이가 사망했다. 미국 국경을 넘다 체포된 이민자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2월 7만6000명에서, 4월 10만9000명, 5월 14만4000명으로 늘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5월 체포된 이민자 중 10만 명이 이상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이민자였다. 보호자 없이 국경을 넘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올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에 온 보호자 미동행 미성년자가 지난 해보다 57% 늘어 4만 명을 넘어섰다.
국경을 넘어서도 이민자 아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이민자 수용시설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 멕시코 국경과 인접한 텍사스주 매캘런과 클린트의 수용시설을 찾은 변호사들은 아이들이 돌보는 어른 하나 없는 시설에서 방치돼 있다고 전했다. 규정상 이민자 아이들은 체포 후 72시간 이내 미 보건복지부 산하 보호시설로 옮겨져야 하지만, 옮겨갈 시설이 포화상태라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몇 주 동안 씻지도 못하고 굶주림만 간신히 면하는 등, 참혹한 환경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비극으로 끝난 엘살바도르 부녀의 사연은 수많은 난민의 목숨을 건 탈출 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4월 3일 엘살바도르를 떠난 라미레스와 아내 바네사 아발로스(21), 발레리아는 멕시코 남부 국경 타파출라의 이민자 보호소에서 2개월 머문 뒤 23일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도착했다.
1500㎞가 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지난 23일 미-멕시코 국경에 도착한 이들은 당초 미국 망명을 신청하려 했으나 "다리가 폐쇄됐으니 내일 오라"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국 망명 신청을 하려했으나 몇 주나 걸린다는 말에 결국 이들 가족은 강을 헤엄쳐 건너가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됐다. 먼저 딸을 미국 쪽 국경을 넘어 강을 건너도록 하는데 성공한 아버지는 다시 아내를 데리러 강을 다시 건너려 했다. 혼자 남아 놀란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강에 뛰어들었고, 이 아이를 구하려던 아버지는 딸과 함께 급류에 휘말리고 말았다.
엘살바도르 부녀의 비극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매우 심란하다"면서도 비극이 일어난 것은 민주당 탓으로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백악관을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 제대로 된 이민법이 있다면 그들은 국경을 넘어오려는 시도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민주당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다가 죽지 않도록 관련 법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비인도적인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정책으로 난민들의 비극이 양산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이민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늘리는 예산도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다.
이날 이민자 지원 예산을 일부 포함한 45억 달러(약 5조 2000억 원) 규모의 긴급 지원 법안이,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찬성 230표 대 반대 195표로 통과됐으나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이 법안을 거부했다. 상원은 대신 지원보다 국경단속 강화 예산을 강화하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 대해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은 이 법안이 하원에 상정되기도 전 다시 거부 입장을 밝히며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공세를 강화했다. 민주당의 반발로 연기해온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 작전을 2주 뒤에 실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멕시코 정부는 그동안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을 사실상 단속하지 않았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 이민자 행렬을 막기 위해 꺼내든 관세 압박에 대한 타협책으로 단속을 강화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라미레스 부녀의 죽음에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미국이 이민을 거부할수록 목숨을 걸고 사막이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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