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노사관계, 경제성장, 환경과 개발 사이의 갈등 등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5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경제정책의 가닥을 못 잡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거기다 국제적인 경기침체까지 겹쳐 많은 경제주체들은 체감경기가 97년 외환위기때보다 나쁘다고 아우성이다. 노무현대통령도 향후 국정운영의 중심을 경제에 맞추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와중에 이번에 번역된 묵직한 책 한권은 해법찾기에 좋은 나침반 역할을 할 듯하다. 데이빗 코우츠가 2000년에 펴낸 <현대 자본주의의 유형: 세계 경제의 성장과 정체>(문학과지성사 간)가 바로 그 책이다.
***새천년에 지향해야 할 자본주의 모델은?**
데이빗 코우츠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을 쓴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새천년에 어떻게 경제성장을 진작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은 본질적으로 특정한 자본주의 모델의 생존 가능성에 관한 것이고 또 복지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바로 우리가 새천년에 지향해야 할 자본주의 모델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인 셈이다. "앞으로 어떤 자본주의 모델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인가?"
저자는 바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에둘러 갈 것을 권한다. 새천년에 지향할 자본주의 모델을 찾기 위해서는 지난 세기 자본주의 역사를 좀더 꼼꼼히 살펴봐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성장'과 '정체'라는 두 가지 화두를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 독일, 스웨덴, 일본, 한국 등 각국을 대상으로 20세기 자본주의를 유형화하는 방대한 작업을 해낸다.
***20세기 자본주의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
그의 유형화에 따르면 오늘날 자본주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시장-주도 자본주의), 발전 지향형 자본주의(국가-주도 자본주의), 협상형 또는 합의제적 자본주의(코포라티즘 모델)가 그것이다. 각 자본주의 유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미국과 1979-1997년 사이의 대처형의 영국이 해당된다. 이 모델은 자본 축적의 결정이 압도적으로 사기업에 달려 있고, 국가의 개입은 대개 시장의 형성과 보호에만 국한된다. 정치와 사회 전체의 윤리에 관한 주도적인 관점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이다.
발전 지향형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달리 자본 축적의 결정이 항상 공공 기관과 밀접한 연락을 취한 후에야 내려진다. 종종 이 과정은 행정 지도와 은행 경영층을 통해 간접적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하에서 주도적인 문화 형태는 보수적-민족주의적이기 쉽다. 전쟁 직후의 일본 경제가 단적인 예이고, 1997년 위기 전 한국 경제도 이 유형에 부합된다.
협상형 또는 합의제적 자본주의는 사회민주적 또는 기독교 민주적인 문화 속에서 나타난다. 흔히 '유럽 사민주의'나 '라인강 모델'이라고 불리며 전후의 스웨덴이나 서독의 경제가 이 유형의 보기로 제시된다.
이렇게 자본주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을 대표로 하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나 독일, 스웨덴을 대표로 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참여자본주의, stakeholder capitalism) 또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꾀했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을 지칭하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관심은 줄곧 경제학자들의 중요한 화두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들과 차별되는 이 책의 미덕은 한두 가지 잣대가 아닌 복합적인 요인들을 통해서 유형을 나눈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20세기 후반에 전지구를 석권한 자본주의를 노동운동의 효과, 교육과 노동 숙련도, 개별 국가의 독특한 문화, 산업과 금융의 구조, 생산력과 경쟁력 등 다양한 요인들을 연관해 분석한다. 또 분석 과정에서 이론적 측면, 경험적 측면, 역사적 추이를 종합함으로써 20세기 후반 자본주의를 요령있게 개괄하고 있다.
***21세가 우리가 따라갈 모델은?**
저자는 앞에서 열거한 세 가지 모델 모두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본다.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자본주의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가 도달한 결론이다.
코우츠는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대응을 보여주면서 이런 상식적인 결론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재 대다수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위기 극복을 '노동 비용 저하'를 통해 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본가들의 이런 전략이 단기적으로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최근 국내외의 심한 빈부격차와 이에 따른 사회 혼란상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주로 '성장'과 '정체'의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탓에 환경과 '지탱가능한 경제 모델'에 대한 관심이 누락된 부분이나, 동일한 자본주의 모델로 유형화되어 있는 독일과 스웨덴 사이에도 복지제도의 차이에 따라 경제 주체들의 대응이 다르다는 복지사회학자들의 관점이 반영이 안 된 부분은 이 책이 가지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경제 모델을 통해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제 모델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주는 길잡이로는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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