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상태에 빠져있는 지방대들이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신입생 확보난 등 위기에 처한 지방대들이 중국내 교육수요를 노리고 중국교육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개방화, 공업화에 따른 중국내 고급기술인력 양성에 국내 대학이 나선 것이다.
또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신입생 미충원 인원 급증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학들을 대상으로 통폐합을 유도하고 협의 조정하는 전담기구를 7월중 만들기로 하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본격적인 대학 구조조정이 예고되는 시점이다.
***외국 학생 유치에서 아예 외국 진출로**
동의공업대는 중국 베이징 시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베이징 시에 분교인 '베이징고려직업기술대학'을 설립, 9월에 신입생 입학식과 함께 개교한다. 동서대 역시 베이징 이공대와 '동서대 디지털디자인대학원 분원' 설치 협정을 체결하고 9월 중국인 대학원 신입생 2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다른 지방대학들도 중국 유학생 유치 및 분원 설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대학들의 중국 및 해외 진출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지방대들은 신입생 확보난과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외국의 학생들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데 경쟁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유치 노력에 힘입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2000년 6천1백60명에서 2001년에는 1만1천6백46명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안경공학, 미용, 자동차 정비 등을 배워 자국에서 취업, 창업을 하려고 전문대에 입학하는 동남아 학생들은 지방 전문대의 신입생 확보와 대학 재정에 크게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국내 대학들이 "기술, 기능 관련 학과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의 현지 대학보다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에 한국대학들의 현지 진출이 현지 학생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학 통폐합 때 인력감축 용인돼야"**
지방대들의 이런 자구책과는 별개로 본격적인 대학 구조조정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 6월 20일 대교협은 김우식(연세대 총장) 회장과 오명 아주대 총장 등 대학 관계자 16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학 구조조정과 통폐합 방향'이란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이 간담회는 7월중 설립하기로 계획한 대학간 통폐합을 조정하고 협의할 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한 연구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이 간담회에서는 대학 구조조정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특히 "대학 통폐합을 유도하려면 인적 구조조정이 용인돼야"는 주장과 "사립대에만 구조조정 부담을 주지 말고 국립대부터 통폐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실제로 일본은 국립대학 구조조정을 하면서 국립대학 20여개를 통합하기로 결정하고 이들을 내년부터 법인으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아 실행에 옮긴 바 있다.
대교협 관계자에 따르면 7월중 대학간 통폐합 등을 자문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전담 기구가 만들어질 예정이며 이와 별도로 한국 교육 현실에 걸맞는 구조조정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대교협 내 고등교육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방대를 살리기 위한 노력과 대학간 통폐합 등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학력 중시 사회와 잘못된 대학정책이 낳은 지방대 위기**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학력 중시 사회와 잘못된 대학정책이 지금의 지방대 위기를 낳았다고 입을 모은다. 1994년 일정 기준만 충족시키면 대학을 만들 수 있도록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교육 당국이 내세운 뒤,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일반인의 학력 중시 인식과 맞물려 4년제와 전문대를 합쳐 대학이 400개나 되는 현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학생수가 적으면 재정지원도 적은 잘못된 교육 정책에 대학들이 정원 늘리기에 급급했고, 이것이 인구 감소로 인한 고교 졸업생 감소와 맞물려 심각한 신입생 확보난과 지방 대학의 재정 위기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학간 통폐합을 통한 대학 구조조정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대교협 등에서 제안하고, 일부 대학들이 추진 중인 대학 구조조정이 대학수를 적정 수준으로 맞출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지방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지방대 문제의 핵심은 취업"이라고 주장한다.
설사 대학수가 적정 수준으로 감소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처럼 취업 구조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일부 명문대 출신을 중심으로 기득권이 재생산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수도권 대학에만 지원자가 몰리는 현실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즉 지방대를 졸업하고 그 지방에서 상당 부분의 졸업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지방 자립적 인력 수급 체계'를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학벌 사회를 철폐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런 '지방 자립적 인력 수급 체계'에는 각 영역별로 특성화된 대학과 학벌보다는 능력 중심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의 구축이 따라가야 함은 물론이다.
실제로 프랑스나 일본 등, 지방대 살리기에 일찌감치 나선 나라들이 주로 내세우고 있는 정책도 이와 유사하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대학간 평준화 정책을 오랫동안 시행해 온 프랑스는 지난 2000년부터 지방대 육성을 위한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연구소 등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 작업을 추진해 지역별로 선정된 특정 기술 분야를 육성하는 데 공동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이다.
즉 지역 내 대학, 기업, 연구소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특성화 분야를 선정한 뒤, 대학은 인재를 배출하고 연구소와 함께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기업이 이를 산업에 연계시켜 그 산업에 지역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일정액의 지원금을 분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성화 분야 선택부터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일체 관여하지 않는 것도 특색이다.
일본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지방대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공계나 상경, 인문계열 등 특정 분야에 특성화된 두서너 개의 대학들이 그 지방에 필요한 상당수의 인재들을 배출하고 이를 해당 지역 기업이나 국가 기관에서 적극 활용하는 식으로 지방대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규슈 지방의 사립 구마모토학원대학교는 상경계열과 인문계열 위주로만 특성화전략을 꾀해 지역의 다른 대학과 차별화하였다. 이런 대학간 차별화 정책은 지역에서 유사학과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 문부성의 대학정책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학교는 입학생의 70%를 구마모토현 출신으로 채우고 있고, 졸업생의 70%도 구마모토현으로 취업하는 전형적인 '지방 자립적 인력 수급 체계'를 구현하고 있다.
***정부, 말이 아닌 실천을 보여야**
노무현 정부 역시 취임과 동시에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 특성화 방안을 내세우고 있다. 그 세부적인 내용도 앞에서 살펴본 프랑스나 일본과 대동소이하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정책 당국이 우왕좌왕하는 탓에 지방 대학이나 지자체, 기업이 정부 정책을 불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국토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억제'란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외국인 투자기업의 수도권 공장설립을 허용하고, 삼성전자 화성공장 증설을 허용키로 한 방침을 정한 것은 그 전형적인 예라는 것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정부는 지방대 육성, 지방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도 경기가 나빠지면 금방 반(反)지방적 정책을 취하곤 한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 과연 어느 세월에 지방문제를 풀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정부의 갈짓자 정책에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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