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 당시 전두환 씨가 광주로 직접 내려와 계엄군의 시민 살상 명령을 내렸다는 구체적 증언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발포 명령과 관련한 전 씨의 과거 태도가 새삼 주목된다. 전 씨는 발포 명령자임을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관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이름의 특별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용장 전 미군 정보부대 정보관과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은 "발포 명령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얼핏 전 씨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증언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발포'와 '사살'의 용어 개념이 다른데, 전두환은 '사살 명령자'인 만큼, 그의 만행을 밝힐 단어를 신중히 써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발포 명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5.18 당시 계엄군의 시민 집단 학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두 사람은 언론이 ‘발포’의 개념부터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다.
김용장 씨는 "군 용어에서 '발포'란 상대방이 총격을 가했을 때 현장의 군인이 자위권 차원에서 '스스로' 결정해 시행하는 행동"이라며 "전두환은 20일 정오 경 광주로 직접 내려와 '사살 명령'을 내렸으리라는 게 내 합리적 추론"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전 씨가 1980년 5월 21일 정오를 전후해 광주 K57 제1전투비행단 비행장에 헬기를 타고 도착,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과 이재우 당시 505 보안부대장(이후 매일유업 감사를 지냄) 등 극소수 인물과 비밀회의를 하고 서울로 돌아간 사실을 상부인 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에 보고한 인물이다.
5월 21일은 계엄군의 시민 집단 학살 당일이다. 김 씨의 말을 정리하면, 전두환의 광주 방문 직후 계엄군의 시민 학살이 시작됐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전 씨의 광주 방문 목적이 시민군 집단 학살을 명령하기 위했으리라고 추론했다. 전 씨가 5.18 당시 광주를 직접 방문했다는 최초의 구체적 증언자다.
5.18 당시 광주의 계엄 업무를 실질적으로 현장 지휘한 부대인 보안사 505 부대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한 허장환 씨 역시 "전두환이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다.
허 씨는 "'발포'는 초병이 다수의 외침자로부터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대응하는 행위"며 "당시 신군부는 '계엄군의 발포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시민 사이에 위장한 공수특전단으로 하여금 상당 기간 광주 시내에서 지체토록 했다"고 전했다.
허 씨는 이어 "제가 직접 목격한 바에 따르면, 계엄군은 '앉아쏴 자세'로 시민을 겨냥해 사격했다"며 "절대 자위적 '발포'가 아닌 '사살'이었다. 전두환은 '발포 명령'을 내린 게 아니라,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지적에 따르면, 언론이 5.18 당시 계엄군이 '발포'했다는 단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이라는 전 씨 측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둘은 언론이 단어를 잘 사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시민군 헬기 저격도 이뤄졌다"
허 씨는 전남도청 진압을 위해 계엄군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시민군을 헬기에서 저격해 사살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허 씨는 "계엄군이 27일 전남도청 진압 작전을 펼쳤는데, 당시 공수특전단에서 내려온 지침이 '한 명의 (계엄군) 사상자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며 "은밀히 도청을 진압하러 계엄군이 이동하는 길에 전일빌딩 위에 시민군 저격수가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헬기로 저격수를 사살하는 작전이 수행됐다"고 말했다.
해당 증거는 당시 비행계획서를 찾으면 확인 가능하다고 허 씨는 밝혔다. 그는 "헬기 저격은 헬기가 공중에 멈춘 상태(호버링 스탠스)에서 상부의 무전 지시에 따라 이뤄진다"며 "비행통제소 명령권자의 사살 명령이 당시 비행계획서에 남아 있을 것이고, 이 자료를 확인하면 논란이 된 헬기의 전일빌딩 사격 핵심 자료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헬기로 무차별 발포를 했다는 증언은 그간 신군부가 거짓으로 주장해 온 내용의 하나다. 하지만 최근 탄흔 과학수사와 법적 판단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