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이라크 전후 통치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9일부터 예정했던 러시아 방문 일정을 8일(현지시간) 돌연 취소, 미국-영국의 외압에 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아난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던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정상들의 회담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을 수락해 러시아를 방문, 전후 이라크 처리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도 이라크 재건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1일 러시아를 방문, 러시아 페테스부르그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이라크 전후 복구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은 9일 “유엔 대변인은 이같은 취소가 이달 17일부터 아테네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요미우리 신문은 유엔의 공식적인 해명과는 달리 “미국과 영국이 아난 사무총장에게 현시점에서의 유럽방문은 의미가 없다면서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어 결국 이를 관철시켰다”는 유엔 외교소식통의 말을 함께 전했다.
전후 이라크의 문제를 둘러싸고 미 정부는 임시행정기구 등 통치방안을 미국 주도로 추진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8일 조지 W.부시 미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간 정상회담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전후 통치의 정당성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안보리 결의 없이는 전후 통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같이 양진영간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아난 사무총장이 급작스레 러시아 방문 계획을 취소함에 따라 역시 유엔은 미국의 그늘아래 존재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돼, 유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아난 사무총장에 대한 불신임 압력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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