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탄력근로제'라는 단어가 출판계에 등장했다. 당혹스러웠다. 재직 출판노동자의 80%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고, 외주 출판노동자들은 특수고용 형태라 노동시간의 제한 적용을 받지 않는데, 탄력근로제라니. 남은 20% 재직 출판노동자의 노동시간까지 넘보는 데에 분노가 일었다.
사업장 노동조합이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수 있는 형편이라 출판노동자에게 '노동 개악'은 불구덩이 속에 나 홀로 무참히 내던져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두려웠고,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노동 개악에 맞서 싸워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생겼다. 이미 방송·영화 스태프들이 장시간 노동 근절과 탄력근로제 저지를 위한 싸움을 하고 있던 터라, 출판노동자들은 그저 함께하면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현장 투쟁을 하고 있으나, 흔히 문화예술인과 노동 관련 법·제도는 연관이 없는 듯 여겨진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실은 노동의 결과인) 작품만 부각될 뿐,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인 역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조직되지 못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춰진다. 문화예술인들이 오랫동안 노동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애써왔다는 사실 역시 낯선 이야기이다.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노동자이다
방송·영화 스태프, 편집자, 작가, 예술강사, 뮤지션, 배우, 사진가, 무용인 등 일일이 열거하는 게 숨찰 만큼 다양하고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문화예술인들의 노동은 사회적으로 제대로 얘기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체제에서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고 인지되지는 않는 것이다.
방송·영화 스태프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편집자를 비롯한 출판노동자들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로 근로기준법의 완전한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예술강사들은 초단시간 노동자들로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서 사회보험의 일부만 적용받고 있을 뿐이다. 웹툰·웹소설 작가들은 플랫폼 노동자이고,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은 아직도 길 위에서 싸우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진 모든 노동의 문제가 문화예술인들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이들의 가난은 예술로 포장된다. 그러나 예술가의 잇따른 죽음으로 예술가들의 생존권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노동자성 인정을 통한 권리 보장은 기어이 피해간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예술인들이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듯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식은 아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문화예술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동일하다.
이렇듯 만만찮은 상황 속에서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발언력은 미약하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기도 어렵지만, 조직되어도 각 산별로 흩어져 있어서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그럼에도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지치지 않고 쭉 말해오고 있다. 문화예술인들도 노동자라고,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말이다.
시혜가 아닌 권리 보장을, 선언을 넘어 투쟁으로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 개악을 멈추고, 문화예술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길 요구한다. 출판·방송·영화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철폐되어야 한다. 예술강사들의 정규직 전환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예술인들의 생존권 보장은 고용보험 적용을 넘어선 노동자성 인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인들은 선언을 넘어 투쟁을 조직해나갈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것, 5월 11일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깃발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 시작이다.
정부의 시혜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우리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으로 생존권과 노동권을 쟁취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로서 제대로 존중받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가는 그 길에 더 많은 예술인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