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이 일회성에 불과한 것이라면 금융시장이 지금처럼 출렁거릴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SK 분식회계 사건이 미국의 월드컴 사건처럼 일련의 분식회계 사태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면 '제2의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위기감도 마냥 무시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월가 등 해외자본들은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한국 기업들이 저질러온 분식회계의 판도라 상자'를 연 것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
블룸버그 통신의 아시아 담당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주니어는 17일 일본 도쿄발 기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재벌 개혁 의지로 인해 회계문제가 더 불거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투자자들은 한국의 3위 재벌인 SK그룹이 수익을 부풀렸다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겠느냐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 위기가 절정에 이른 1998년 9월 이후 정부와 기업의 채권들이 지난 주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97,98년 한국 경제 붕괴 배후에 부채와 회계조작이 있었는데, 투자자들은 또다시 한국에서 이같은 사태가 재발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페섹은 "사태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엔론이나 월드컴 같은 사건도 알기 훨씬 전인 99년 세계 최대의 분식사건의 발생지가 한국이었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당시 한국의 대우는 3백억 달러의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8백억 달러의 빚을 남기고 파산했다"고 지적했다.
페섹은 "지난주 채권 시장의 반응도 투자자들이 'SK그룹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 아니냐'는 우려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한국의 경제는 올해 4% 경제성장률을 예상하는 등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미시경제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 및 기업 부문이 불안정한 전개로 시장이 타격을 받고 투자가 위축되고 있어 많은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낮추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페섹은 "SK그룹 사태는 이미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한국의 2위 은행인 우리은행의 채권의 경우 지난주말 달러화표시 채권(2010년 만기) 수익률이 12.75%로 미 재무무 채권과 비교해 4.1%나 많은 것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수익률 차이는 2.92% 정도였다"고 말했다.
페섹은 북핵 위기도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SK그룹 사태가 한국 경제에 훨씬 큰 위험"이라면서 "투신권에서 지난 주 40억 달러가 빠져나간 뒤 인출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면서 "대우 붕괴 후 투신권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던 99년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섹은 특히 가계 부채 특히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으로 급증하고 있는 부채가 97, 98년 위기를 촉발시킨 기업부채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금융산업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재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계속 밀고 나간다면 한국의 가장 유명한 기업들에게서 시장을 뒤흔들만한 문제들이 들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페섹은 "분식회계 사건이 속출할 경우 SK그룹 사건은 흔한 것이 되면서 한국의 경제가 궤도를 벗어나는 사태가 초래될 있다"고 경고했다.
페섹은 "게다가 한국의 사태는 아시아 경제가 갑자기 악화되는 사태와도 관련이 있다"면서 "투자자들은 아시아의 부채와 회계 문제에 대해 새삼 우려하고 있어 아시아 위기가 다시 닥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럴 위험이 높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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