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지난 17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주한외국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민영화 계획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해 “한국의 공기업 민영화 일정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외국투자자들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시니컬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의 공기업 매각에 참여하고 있는 해외투자자들은 민영화 계획을 한국의 경제개혁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FT는 “노 당선자의 발언으로 가스와 철도 민영화 일정이 불안해졌다”며 우회적으로 에너지부문 민영화를 약속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FT의 이같은 보도태도는 서방자본의 이해관계만 반영하는 또하나의 '일방주의적 시각'이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노 당선자, 에너지 민영화 신중론**
노 당선자는 17일 연설 직후 기자들로부터 에너지 산업 민영화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고 “가급적 모든 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일부 선진국에서 실패한 산업부문, 즉 자연독점 분야, 공익성이 높은 산업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일문일답 시간에 구체적으로 에너지 산업 민영화에 관한 질문을 받자“에너지 산업의 경우 분배하는 분야(배전분야)는 경쟁이 어렵지만 만드는 분야(발전분야)는 경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노 당선자는 민영화 속도도 “시장이 흡수할 수 있을 때, 예컨대 제값을 받고 주식을 팔 수 있을 때 민영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헐값 매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자본과 경영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기업에 무리하게 넘길 경우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대다수 남미 국가는 물론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조차 공공기간산업 민영화의 실패 사례가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에 노 당선자의 발언은 이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국도 에너지, 철도 민영화는 대실패작**
한 예로 FT가 발행되고 있는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영국은 공기업 민영화의 간판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지난 96년 운송과 선로 부문으로 나뉘어 민영화됐다. 그러나 2001년 10월, 토니 블레어 총리가 “철도의 민영화는 실패했다”고 공식 선언하며 철도선로부문이 재국유화되었다. 민영화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도 당시 레일트랙(Railtrack: 선로시설 담당회사)이 아니라 ‘실패한 트랙’(Failtrack)이라고 비꼬았다. 민영화 당시 집권당이었던 보수당조차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영국의 전력 민영화 실패사례도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1990년 세계 최초로 민영화 모범 사례라는 전력 민영화 결과 탄생한 브리티시 에너지는 약 1조원에 이르는 공적 자금을 투입받아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값도 엄청나게 올라 가계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구입에 사용하는 에너지 빈곤인구가 전체 가계의 16%(4백만 가구)에 이르렀다.
개도국인 페루의 경우는 전력 민영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다 지난해 6월 시민 폭동이 일어나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하나의 일방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FT는 “노 당선자의 중도좌파적인 정치경력과 한국의 강성노조과의 긴밀한 관계 등으로 그의 경제정책이 국제 투자자들의 면밀한 감시를 받고 있다”며 특히 “세브론텍사코, 엑손 모빌, 로열더치/셸, 브리티시석유(BP) 등 몇몇 거대에너지기업들이 한국의 가스 부문에 관심을 보여왔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같은 FT 보도 태도에 대해 국내의 한 경제전문가는 “FT가 영국의 철도 및 전력 민영화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잘 알고 있을 텐테 아마 그런 사정도 잘 모르는 기자가 쓴 글이 아니냐”고 힐난하면서 “이 분야의 민영화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이 충격받을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해 FT의 보도태도는 서방자본의 이해만을 반영한 또하나의 일방주의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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