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흔히 'IT강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표준으로 채택된 원천기술 보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IT미개국"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3대 수출품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한 휴대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세계최초로 CDMA방식의 휴대폰을 상용화시킨 나라다. 그러나 CDMA 원천기술보유사인 미국의 퀄컴에 매년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게다가 휴대폰 속에 들어가는 핵심칩은 전량 퀄컴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국내 1위의 휴대폰 단말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의 경우 단말기 한 대당 5% 정도의 로열티를 퀄컴에 지급하고 퀄컴의 칩을 수입해 쓰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단말기는 4천2백만대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퀄컴사 모뎀칩(개당 15달러) 수입액이 고스란히 퀄컴측에 흘러가고 있다.
이를 국산화하기 위한 노력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국내 한 벤처기업(이오넥스)이 문제의 핵심칩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해 시제품 시험단계에 와있으나 지금 마지막 벽을 못넘고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이네넥스의 전성환 사장을 만나 무슨 사연인지를 알아보았다.
***삼성전자서 개발한 칩은 '퀄컴 견제용'으로만 사용돼**
휴대폰 핵심칩은 국내최대 단말기 제조회사인 삼성전자도 이미 지난 99년 자체 개발에 성공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국산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전성환 사장에 따르면 그 속사정은 이렇다.
"퀄컴은 원천기술 보유사로서 다른 회사가 칩을 자체 개발해도 자사 제조 단말기 외에는 쓸 수 없도록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대량생산체제를 갖출 수 없다. 단지 자체개발은 퀄컴사의 칩 가격을 내리도록 하는 압박수단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당시 개발팀장이었던 전성환 사장은 이런 현실에 절망하고 '기술독립'을 이루겠다는 야망을 품고 삼성을 떠나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이오넥스이다.
전 사장은 연세대 전자공학과와 미국 스탠포드 대학원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돼 97년부터 CDMA팀장을 거쳐 이사급 연구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자신과 밑의 팀원들이 밤새워 개발한 제품이 빛을 보지 못하자 독립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다행히 그는 칩 라이센스 생산권을 퀄컴으로부터 어렵게 확보하고 기존의 개발 경험을 갖고 있었기에 빠른 시간내에 제품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본격생산에 들어가면 해마다 5천억 매출 가능**
전 사장은 퀄컴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까닭에 라이센스 생산 지위는 벗어날 수 없지만 칩이 국산화되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2세대, 3세대 휴대폰 기술에 사용되는 핵심칩은 개당 20달러~50달러에 이르는데, 이같은 국부유출을 로열티만 내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휴대폰 자체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제조업체들은 개당 10~15달러의 칩 구매비용 외에 단말기 가격의 일정 부분(5.25~5.75%)을 기술료로 매년 퀄컴에 주고 있다. 지난 98년이후 4년 동안 지급한 기술료만 1조원이 넘는다.
현재 국내업체들은 퀄컴으로부터 매달 4백만개 정도의 칩을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이오넥스가 1백만개를 대체 생산한다면 1년에 5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또한 휴대폰 시장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추세에 있어 3년 후면 매달 5백만개, 액수로는 2조5천억원어치를 판매할 수 있다.
전 사장은 "이오넥스가 지난해 10월 독자개발한 'W-CDMA' 및 'CDMA2000 1X' 통합칩은 현재 상용화된 2세대와 3세대에 모두 적용된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라고 말한다. 더욱이 세계 최초로 신호를 송수신하는 모뎀칩과 프로토콜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칩으로 통합했다는 점이 강점이라 했다.
그는 "이같은 통합칩은 퀄컴사도 이르면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 중반이나 돼야 개발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앞선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한다.
전 사장은 "우리는 불과 40여명의 직원이 2백억원의 자금으로 지난 2000년 4월부터 개발에 착수해 성공했다"면서 "다만 시제품 단계이며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상 6개월마다 새로운 서비스를 칩에 부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휴대폰 업계에서는 " 세계적인 퀄컴사와 경쟁한다는 것도 버거운 일이며 일개 벤처기업이 취급하기에는 너무 큰 사업"이라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창업투자사 등에서도 한 번 투자를 하면 계속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사장은 "이달말까지 퀄컴에게 수백억원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데 당장 필요한 2백억원 가운데 국내 창투사 5곳과 대만의 창투사들로부터 1백50억원 정도는 조달이 될 것으로 보지만 나머지 50억원 정도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태식 게이트후 정부 지원 기피**
국내 휴대폰 단말기 생산업체들은 모두 칩을 자체개발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개발에 성공한 이오넥스에 투자해 국산화시키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투자해주고 싶어도 못하는 사정이 있다. 여러 규제 때문이다.
전 사장은 "LG텔레콤이 현재 시제품을 시험중에 있는 단계에 와 있다"면서 "대기업의 출자 금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하게 되고, "이오넥스로서도 그렇게 되면 벤처기업 자격을 잃게 되기 때문에 곤란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핵심기술을 개발하고도 상용화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난관을 극복못하고 주저앉는 일은 국내업계에서 종종 있어 왔다. 지난해 지문인식기술개발을 했다는 패스21은 '윤태식 게이트' 비리를 부르며 사회에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 결과 관련 정부부처는 벤처자금지원에 미온적이다.
DJ정부 시절의 벤처육성정책은 머니게임으로 전락하면서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육성은 여전히 우리 경제가 나가야 할 몇몇 안되는 대안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과연 노무현 새 정부가 '머니게임 벤처'와 '기술 벤처'라는 옥석을 제대로 구별, 참다운 벤처시대를 개막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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