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에 '메인스트리트(워싱턴 정가)'보다는 '월스트리트(뉴욕 금융가)'가 적극적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다.
2004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강경정책에 동조하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금융자본의 본산인 월가에서는 지구촌 최대성장지대인 한국, 중국 등 동북아 지역의 평화가 해외투자 활성화의 관건이라는 점에서 대북 대화와 교류를 주장하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공개리에 지지해 왔다.
***블룸버그, "한국 증시·채권·원화 강세 보일 것"**
특히 노골적일 정도로 노무현 지지 입장을 표명해 온 미국의 세계최대의 경제전문통신사인 블룸버그 통신은 19일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한국 증시, 회사채, 원화 등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이 통신은 "새 대통령은 재벌들의 무분별한 팽창을 억제할 것이며, 국영 자산의 해외매각을 허용하고, 증폭되고 있는 북한과의 긴장을 해소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콩 리젠트 파이낸셜 서비스에서 한국 등 아시아 증시에 1억2천만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줄리언 메이요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과의 교류를 추진해온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지속함으로써 불확실성이 상당히 제거될 것"이라면서 "한국의 주식을 추가 매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삼성전자의 해외주식예탁증서(DR)가 11월 4일이후 하루 최대상승폭을 기록하며 72.60달러로 올랐다. 국민은행 DR도 뉴욕증시에서 2.2% 상승한 39.83달러로 올랐다.
그러나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채권시장 분석가 딜립 샤하니는 "향후 보다 부각될 위험요소는 북한"이라면서 "내년에 북한 문제가 시장에 상당한 긴장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노무현 당선자의 기업정책에 대한 입장도 자세히 언급했다. 노 당선자는 97~9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재벌의 무분별한 팽창을 방지할 수 있다면서 '삼성, 현대 등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노 당선자는 법인세 감면도 하지 않을 것이며 조흥은행 등 협상중인 정부 자산 매각을 완료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개방과 노동개혁 사이의 균형점 찾기가 과제**
그러나 이 통신은 해외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노 당선자의 정책이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관계의 결속이 약화될 수 있으며, 한국의 노동법 완화가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다.
베어스턴스 증권의 아시아 지역 투자전략가 마이클 커츠는 "노무현의 경제정책 노선이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면서 "그가 시장친화적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도 대선투표일을 앞두고 "해외투자자들은 노무현 후보가 기업들의 지배구조 등 투명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그 이외의 부문에서는 '지나치게 튀는(maverick) 입장을 취하지 않을가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총 관계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기업경영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와 장애물들이 완화되거나 제거돼야 한다"면서 "법인세를 감면해주고 노동법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조건을 달아 노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 것도 이러한 재계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새 대통령이 한국의 과거를 단절시키려는 의욕이 해외투자자들에게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리 캐피탈의 이남우 대표는 "노 당선자는 과거 노동운동가 전력으로 볼 때 노동시장개혁을 지속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회창 후보보다 노무현 후보가 더 개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당선자가 햇볕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도 시장이 환영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경제 측면에서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국내외의 시각은 "시장개방과 관련한 외부압력과 노동정책에 관한 내부압력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가느냐에 따라 차기 정부의 성과가 좌우될 것"이라는 한 경제전문가의 말로 정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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