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고수익의 투자기법으로 지난 2년여간 고수익을 향유해온 헤지펀드 업계가 고위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국제금융계에서는 총자산규모가 5천5백억 달러에 달하는 전세계 6천개 헤지펀드 중 1천개 펀드가 심각한 손실로 인해 올해말 문을 닫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컨 힐 강제폐쇄되다**
주택담보채권시장의 최대 헤지펀드인 비컨 힐이 엄청난 손실을 입고 7일(현지시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폐쇄조치와 함께 사기혐의로 고발된 것은 현재 헤지펀드업계가 처한 위기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2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비컨 힐은 지난 7월부터 9월 사이 두 달만에 운용자산의 50%가 넘는 4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냈다.
비컨 힐은 주택담보대출(mortgage) 상품의 금리 급락을 예상하지 못해 모기지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 거래에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월 이 분야에 투자한 헤지펀드 평균 수익은 10%라는 점과 비교해보면, 비컨 힐은 '머니게임'에서 쓴 맛을 본 셈이다.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진실 은폐 시도다. 지난 10월초 이 회사는 회사 최대의 펀드인 운용자산 6억달러의 브리스톨 펀드와 1억4천만달러인 세이프 하버 펀드가 9월달에 25%의 손실을 입었다고 공시를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 회사는 2주일 뒤 54%의 손실을 보았다고 정정했다.
이에 SEC는 이 회사에 남은 15억 달러 자산 모두를 SEC감독하에 있는 헤지펀드 엘링턴사에 넘기고 폐쇄하도록 명령하기에 이른 것이다.
***비컨 힐 사건은 헤지펀드 연쇄파산의 전주곡?**
비컨 힐 사건은 세계금융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 "비컨 힐의 투자자들도 투자손실을 은폐한 비컨 힐에 대해 집단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비컨 힐의 대규모 투자 손실은 최근 2년간 증시 침체 속에서 헤지펀드가 각광을 받아왔으나 헤지펀드는 리스크가 높은 투자 대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헤지펀드 정보 사이트인 헤지펀드닷넷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헤지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9.7%에 달했다. 반면 뮤추얼펀드 조사회사인 리퍼에 따르면 주식형 및 채권형 펀드의 지난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0.6%에 불과했다.
수익률 상위 10%에 드는 헤지펀드는 지난 5년간 연평균 19.8%의 실적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에 주식형 및 채권형 펀드 중에서 상위 10%에 포함되는 펀드들의 연평균 수익률은 이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는 7.5%였다.
수익률이 하위 10%인 헤지펀드의 지난 5년간 연평균 실적조차도 1.5%로 주식형 및 채권형 펀드 중 하위 10%에 드는 펀드들의 연평균 수익률 0.5%를 3배가량 앞섰다. 말 그대로 '헤지펀드 전성시대'였다.
이처럼 고수익에 매료돼 공격적 투자를 하다가 미국경제가 밑둥부터 흔들리자 피해를 보고 파산하는 헤지펀드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가에는 연말에 헤지펀드가 무더기 도산하면서 금융시스템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는 괴담이 나돌고 있다.
***코메르츠방크, J.P.모건도 초대형 손실**
문제는 이같은 파생금융상품의 피해자가 헤지펀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헤지펀드가 주로 투자하는 파생상품이 이처럼 큰 수익을 올리자, 서방의 대형은행은 물론 웬만한 자산운용사들은 모두 파생상품에 손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의 3대은행 코메르츠방크가 파생상품에 손을 댔다가 5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손실로 자본금마저 잠식될 만큼 큰 타격을 받은 사건에서 볼 수 있듯, 파생상품 투자로 엄청난 위기에 처한 대형은행들이 속출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은행주가 일제히 급락한 것도 실질 금리 마이너스 시대로 돌입함에 따라 은행의 순익률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뿐 아니라 파생상품에서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특히 파생금융상품에서 큰 손실을 보았다는 소문이 돈 J.P.모건 체이스는 6.62% 급락했고 플리트보스톤파이낸셜과 멜렌은 각각 6.04%, 4.83% 미끄러졌다. 모건스탠리도 5% 가량 내렸다. 씨티그룹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 역시 각각 3.8%씩 하락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7일 "낮은 금리로 인해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회사채나 파생금융상품 등 위험 부담이 큰 투자를 선호할 수 있다"고 우려섞인 보도를 했다. 파생금융상품 위기가 앞으로 더욱 증폭될 가능성을 우려한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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