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이 사상 최저치 수준에서 헤매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공급과잉이라는 게 증시전문가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1999년 12월에서 현재까지 코스닥지수가 5분의 1로 떨어졌음에도 등록기업수는 오히려 82%나 늘어났다. 해마다 거래소의 10배가 넘는 기업들이 등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급과잉 못지않게 코스닥을 침체시키고 있는 더 큰 원인은 오너들의 주가조작 및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차익 챙기기와 가지급금 명목으로의 회삿돈 빼내기다. 과거 코스닥 황제주였던 새롬기술이 최근 이런 문제로 주가가 폭락한 상태다. 문제는 새롬기술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스닥의 또다른 황제주로 엔씨소프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벤처기업 모디아가 최근 말썽이다. 서울지검은 21일 모디아의 김도현 대표를 긴급체포했다. 컨설팅업체 대표 이모(42·구속)씨와 짜고 자사 주가를 조작한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작년 6∼12월 이씨의 본인 및 차명계좌 49개를 이용해 허수주문·가장매매 등의 방법을 동원해 무려 3천6백여 차례에 걸쳐 모디아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98년 설립된 모디아는 지난해 5백37억원의 매출을 올린 모바일 시스템통합(SI) 전문업체로, 작년 8월에는 주가가 주당 11만5천원(액면가 5백원)까지 치솟으며 ‘황제주’로 불리기도 했다.
이 회사의 김도현 대표는 카이스트 출신. 하지만 한때 술집 호객행위를 하면서 연명하고 음독자살까지 기도했던 비참한 시절을 딛고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 세간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보유주식 시가평가로 부자 서열 8위에 올라있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성공스토리로 올해초 카이스트의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뽑혀 상을 받았고, 얼마 전에는 홍창선 카이스트 원장이 “수많은 박사를 배출했지만 학업성적에서는 실패한 제자가 이토록 성공을 해서 자랑스럽기 그지 없다”며 모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칭찬하기까지 했다. 보기좋게 주위의 기대를 배신한 셈이다.
현재 김씨는 검찰조사에서“주가 조작은 이씨가 한 일로 나와는 상관없으며, 돈 거래는 단순한 대차관계일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씨의 이같은 주장은 별반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8월28일 증권감독원으로부터 시세조종 혐의로 적발된 바 있다. 따라서 장기간의 검찰 조사 끝에 긴급체포된 만큼 김씨가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것으로 증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모디아 사건에서 드러났듯, 코스닥에 등록하기 전 최대주주들이 지분을 차명계좌로 위장분산하는 속칭 ‘파킹’은 주가조작용이라는 게 증시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코스닥 등록기업의 대표이사나 최대주주는 지분변동 사실을 공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이들은 차명계좌를 통한 거래방식으로 공시의무를 회피해 왔다.
코스닥 기업들의 경우는 최대주주가 회삿돈을 빼돌리는 것도 막기 어렵다. 현행 증권거래법은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인 상장ㆍ등록법인에 대해서만 회사가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과 금전을 거래할 때 이사회 승인을 받은 후 다음 주주 총회에서 보고토록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산규모가 2조원이 안되는 대다수 벤처기업들은 최대주주가 얼마든지 돈을 빼내갈 수 있게 돼 있다.
김도현 대표는 시세조정 참여 혐의 외에도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사실상 주식을 매각했다. 그가 보유한 주식 90만주(44.08%) 중 28만주(28.39%)가 지난 8월말 장내 매도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모디아의 주가는 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 8월 27일 2만6천8백원(종가기준)이었던 모디아의 주가는 지난 9월7일 7천7백원(종가기준)까지 수직추락했었다. 현재 김도현 대표의 지분율은 41.3%에서 15.6%로 대폭 줄어든 상태다.
새롬기술과 모디아 사건에서 보듯, 오너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사라지지 않는한 투자자들이 코스닥시장에서 떠나는 사태를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간 우리나라 코스닥도 독일, 스위스 등 유럽시장에서처럼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게 시장관계자들의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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