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심장병 환자들과 보호자가 난리가 났다. 병원들이 수술에 사용하는 인공혈관을 구할 수 없어 수술을 못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고어' 인공혈관 안 팔면…심장병 앓는 2살 보배 살릴 방법도 없다). 재료를 독점 생산하던 외국회사가 2년 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후 이제 재고가 바닥났다고 한다.
불행한 사태이나, 아주 놀랍지는 않다. 2년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사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치료재료나 약품 때문에 환자들이 고통을 받는 일이 어디 처음인가. 간암 환자에 쓰는 치료제 '리피오돌'이 말썽이 된 것은 채 일 년도 되지 않는다.
"최근 게르베가 한국 현지법인을 통해 리피오돌의 약가를 500% 인상하지 않으면 한국에 더 이상 이 약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했다. 최근에는 수입마저 중단되어 '리피오돌'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서 일선 병원의 재고가 바닥나 간암 환자 치료에 적신호가 켜졌다." (☞관련 기사 : 환자단체 "암환자 목숨 볼모로 벼랑 끝 약가협상 다국적제약사 규탄")
먼 옛날(?) 2001년에는 그 유명한 글리벡 사건이 있었다.
"글리벡 개발사인 노바티스가 글리벡의 국내 공급과 관련, 현행 건강보험 약가 제도를 거부하겠다고 밝혀 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 한국노바티스는 25일 "복지부가 최근 고시한 보험약가 상한액에 상관없이 당초 우리측이 제안한 가격에 글리벡을 공급하겠다"면서 (…) 이와 관련,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않고 글리벡을 공급하겠다는 뜻"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글리벡이 필요한 환자들은 회사측이 책정한 캡슐당 2만5천원 전액을 부담하고 약을 구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노바티스, 글리벡 보험적용 거부 파문)
인공혈관, 리피오돌, 그리고 글리벡. 어느 단계에서 어떤 모양으로 일이 틀어졌는지 조금 다를 뿐, 독점과 가격 협상, 이에 이어진 기업과 자본의 '파업'은 현상과 논리는 말할 것도 없고, 근본 배경과 구조도 같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유도 분명하다. 약이나 재료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들이 요구하는 가격과 한국의 건강보험 당국이 주겠다는 가격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이고 수요가 건강보험에만 있으면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인공혈관, 리피오돌, 글리벡은 한국의 건강보험만 수요자가 아니다. 다른 곳에 수요가 충분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한국 시장에 메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협상 전략으로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면, 팔지 않아도 그리 아쉬운 것이 없어서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특히 환자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사태가 생기면 사회적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가격 때문에 공급을 거부한 회사가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주장, 또 한쪽은 가격을 '후려친' 정부와 건강보험이 잘못했으니 이제라도 '제값'을 쳐주고 달래라는 것.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로서는(정부와 환자가 주로 그렇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독점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든지, 사회적 압력과 국제 여론을 통해 타협을 보든지, 아니면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다시 타협점을 찾든지. 아주 익숙하지만, 특히 환자들로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비슷한 일이 재발하는 것까지 막을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자본과 이윤 동기를 핵심 요소로 하는 그 구조의 취약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경제신문이 내는 주간지까지 이런 기사를 썼겠는가(☞관련 기사 : 도 넘은 다국적 제약사 횡포-환자 생명 볼모로 가격 인상·공급 중단 '갑질').
"약값 인상을 내세운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 공급 중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2004년에는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를 위한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국내 허가까지 받았지만 약값 협상이 결렬되자 아예 국내 출시를 중단했다. (…) 이처럼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 중 다국적 제약사가 우리나라에 아예 들여오지 않거나 보험 적용을 신청조차 하지 않은 약이 적잖다. 식약처에 따르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318품목 중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의약품은 76품목(23.9%), 국내 미허가 의약품은 14품목(4.3%)이나 된다."
이대로는 언제라도 같거나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독점 공급하는데,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나 재료인데, 정부와 건강보험이 달라는 가격을 다 주지 않으면? 권력은 기업과 자본의 손에 있다. 언제라도 안전하게 파업을 벌일 수 있다.
이번 인공혈관 사태도 기업이 더 큰 권력을 쥔 것으로 보인다. 세계를 상대로 하는 다국적 기업이 보기에는 이 좁은 한국 시장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설사 단기적으로는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또 다르다. 한 나라만 가격을 낮추면 세계 시장이 영향을 받으니, 가격을 덜 주겠다는 곳에서는 철수하는 시범(위협이라고 해야 하나?)을 보이는 것도 괜찮다 여길 것이다.
환원주의적 구조 개혁론이 피로감을 불러올 법하지만, 다시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구조에 관한 한, 당장 가능한 비법 같은 것도 없으니 더 어렵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고통이 지속할 터, 그래도 구조 개혁은 가야 할 길이고 찾아야 할 해법이다.
먼저, 우리는 모든 노력과 시도가 공공성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시장 원리'에 맡기지 않아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이론으로 보나 실제를 보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이들은 "가격을 낮게 주는데 누가 시장에 남아있겠느냐 철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격을 올리고 다시 들어오라고 설득하라"고 주장한다. 명백히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다. 정부가 건강보험의 가격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거나, 시장 만능주의의 세례를 받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생명과 건강을 둘러싼 윤리 문제는 둘째 치고, 경제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 재료와 약품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게다가 그 범위가 세계 모든 국가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다국적 기업의 행동. 그 원리와 법칙성.
독점 시장에서의 공급은 가격이 아니라 '이익 최대화'에서 결정된다. 가격이 좀 오른다고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외부효과까지 더하면, 시장에서 다른 독점적 공급자가 같은 경로를 뒤따르는 것이 더 심각하다. 나에게 유리한 선례가 있는데 왜 안 그러겠는가?
소박한 경제적 원리조차 보지 못하는 이유. 필수 약품과 재료조차 시장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리하여 돈 없으면 그냥 모든 불행한 결과조차 감수하라는 비아냥은, 그 모든 것이 상품화한 삶의 세계가 생명까지 장악했다는 의미다. 독점이든 다국적 기업이든, 생명이든 필수든 이 단계에서는 그 모든 가치가 무력하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구조적 대책이 있을 수 있을까? 먼저, 이런 시장에 대해, 독점적 지위에 있는 공급자가 마음대로 하라고 놔두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약의 경우는, 심지어 그 미국에서도 지식재산권을 무시하는 '강제실시'를 논의한 적이 있을 정도다(☞관련 기사 : 신종플루 '대란'…타미플루 '강제 실시' 가능할까?). 국가와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책과 제도 이상으로는 '체제'를 바꾸어야 하는 과제. 심장병 수술에는 왜 한 회사가 독점 생산하는 재료를 쓰게 되었을까? 그 회사는 무슨 동기로 그 재료를 만들고 어떻게 '상품화' '시장화'했을까? 행위 주체와 참여자는 이 체제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심지어 과학과 지식도, 그리고 기술도 체제에 의존하며 변화하고 발전한다.
일부 소수만이 아니라 생산자, 의료전문직, 환자, 연구자, 기업, 정부 등이 모두 참여하는, 이제 한껏 상품화, 시장화한 '의료체제'가 이번 사태를 빚은 근본 구조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체제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생산체제'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과제. 체제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목표, 그리고 어떻게 해야 목표로 다가갈 수 있는지 하는 방법, 우리는 숙명처럼 이 두 가지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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