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월 26일 효창동에 있는 백범 기념관에서 사상 첫 국무회의를 열었다. 백범 묘역 등을 참배하였음은 물론이다. 문 대통령은 "친일 청산이 정의의 시작"이라고도 말했다. 좋은 일이고, 잘한 결정이며,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다.
그런데 나는 3.1만세운동 백주년인 오늘 딴지를 걸고 싶다. 정신 없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백범 김구가 위대하지만, 실망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를 꼽는 게 많이 이상하고, 많은 사람들이 김구를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기는 것도 불편하다.
김구를 자연인이 아닌 공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로 볼 때 김구는 독립투사로서의 얼굴과 해방 후 이승만과 권력을 놓고 경쟁한 정치인의 얼굴로 나뉜다.
위대한 건 독립투사로서의 김구의 면모다. 김구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석권하던 일제에 맞서 견결하기 이를데 없는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암흑의 시기에 김구는 강철 같은 의지와 사자의 담대함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을 벌였다. 가난과 풍찬노숙과 신변에 대한 위협과 미래에 대한 암울함이 백범 김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만 김구는 거인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건 견인불발의 독립지사로서의 김구다.
실망스러운 면모는 해방 후 정치인으로서의 김구다. 김구는 국제정세와 국제 역학관계를 보는 눈이 어두웠고, 정무감각도 현저히 떨어졌으며, 새로운 나라에 대한 비전도, 새로운 나라를 만들 식견도 너무 부족했다. 그런 김구가 권력의지는 강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정치인으로서의 김구의 전략적, 정치적 패착은 크게 세 개다. 우선 김구는 이미 미군정이 들어선 이후에 상해 임정의 정통성을 인정해 달라는 실현불가능한 요구를 미군정에 하다 너무 늦게 그것도 개인 자격으로 입국한다. 해방 직후 같은 비상한 시기의 한 달은 평소의 십년과도 같은데 김구는 어리석은 고집을 부리다 천금 같은 시간을 탕진한 것이다.
두번째는 김구의 최대 과오로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잘못으로 김구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담의 결과인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말이 신탁통치이지 실은 조선이 독립국가가 될 역량을 형성할 때까지 몇년 간 미국과 소련 등이 후견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 결정을 수용하고 인민들을 설득하는 대신, 권력의 중심에 설 생각에 오히려 친일반민족행위자들과 손잡고 '찬탁은 식민지배를 연장하는 것'이라며 반탁운동에 앞장선다. 김구의 결정은 분단과 전쟁을 예방할 기회를 상실하는데 큰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인민 다수와 친일반민족행위자 사이에 형성되었던 '민족 VS 반민족' 구도를 '찬탁 VS 반탁' 구도로 변질시키는데도 일조했다. '찬탁 VS 반탁' 프레임은 곧 '좌익 VS 우익' 프레임으로 등치된다. 수세에 몰렸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반탁'의 편에선 후 '우익'의 자리로 옮겨 대한민국을 자기들의 나라로 만든다.
마지막 김구의 과오는 48년에 치러진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불참한 것이다. 이미 단정 수립이 대세(김구 등에 의해 신탁통치가 무산된 후 남과 북의 분단은 필연이었다)였는데, 그렇다면 이승만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라도 김구 등은 총선에 참여해 제도 정치권내에서 지분을 갖고 균형자 역할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김구 등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단독선거 개최를 반대하며 이를 보이콧하는 정치적 패착을 저지른다. 남한만의 선거를 통해 의회가 구성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후 제도정치권에서 배제된 김구 등의 힘은 급속히 위축된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건만, 김구는 그런 권력의 속성에 둔감했던듯 싶다.
'삼팔선을 베고 죽겠다'며 평양행을 강행한 김구의 단심은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이미 그때는 남과 북이 피의 구덩이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던 때다. 김구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고 꼭 일년후 남과 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에 돌입한다.
독립투사로서 그리고 테러리스트로서의 김구는 우뚝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김구는 무능하고 불민했다. 그리고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정치인의 무능과 불민은 너무나 가공할 재앙을 초래한다. 요컨대 권력의 장악과 행사라는 측면에서,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과 정치적 후각이라는 측면에서 정치인 김구는 악마적 마키아벨리스트 이승만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그건 김구 자신과 민족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소득없이 끝난 지금, 나는 우리가 위대한 김구의 얼굴과 시시한 김구의 얼굴 모두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간지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에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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