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이냐, 교착이냐. 세계의 시선은 이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개월 만에 재회해 도출할 교집합의 폭과 깊이에 쏠린다.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담길 '하노이 선언'이 내일 공개된다.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이어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의 '밀당' 과정에서 양측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윤곽을 드러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도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된다.
'영변 플러스 알파' 원하는 미국
영변, 동창리, 풍계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이 북한이 쥐고 있는 핵·미사일 카드다. 이 가운데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비핵화 조치의 기본값으로 본다. 북한 핵능력의 심장이라고 할 만한 영변 핵시설의 동결을 넘어선 폐기를 약속 받는 것이 '빅딜' 최소 조건으로 본다는 의미다.
북한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선언문을 통해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명시했다. 합당한 대가를 전제로 달았으나 영변 핵시설이 비핵화 1순위 조치라는 점을 북한도 인정한 것이다.
미국은 영변을 넘어선 '플러스 알파'도 원한다. 영변 외 우라늄·플루토늄 시설을 비롯해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등 대량살상무기도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영변 등 핵시설과 핵무기 폐기는 단시일에 완성될 수 없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 신고→사찰→검증→폐기 절차를 밟아 진행되는 장기과제다. 양국의 불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상황에선 북한에 있는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 목록 제출 합의도 쉽지 않다.
이 같은 난관 때문에 미국 측도 '포괄적인 핵신고' 요구 수위를 다소 낮춘 분위기다. 스티븐 비건 대표가 지난달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비핵화가 최종 완료되기 전에 북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전모를 알아야 하겠지만, 미국은 향후 어느 시점에 북한의 포괄적 핵신고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비핵화 초기 단계에 핵물질과 시설에 대한 신고를 요구하던 미국의 기존 입장이 크게 완화됐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이미 폐기했거나 폐기를 약속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 대한 시설 검증 및 사찰이 비핵화 입구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제재 완화 플러스 알파' 원하는 북한
북한은 '제재 완화 플러스 알파'를 원한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은 10여개다. 북한 관련 단체나 개인의 자산 동결 등 미국의 독자적 대북 제재도 북한을 압박해왔다.
비핵화 과정만큼 대북 제재도 단숨에 풀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유엔 제재는 국제사회의 결의를 통해 이뤄진 제재인 만큼, 유엔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더라도 국제적 승인을 얻어내야 해제가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부분적 제재 예외 조치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되게 거론되는 것이다. 즉 남북 철도 사업이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에 한해 부분적 제재 면제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남북 사이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고,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 역시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부분적 제재 완화를 충분히 받을 만하다"며 "이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별도의 제재 완화 결의안을 내거나 예외 규정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국제 제재의 수위가 제도적으로 낮춰지기를 원하는 북한이 남북 사업에 관한 특정 제재만 예외로 하는 대가로 핵능력의 심장인 영변을 포기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밖에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이나 그에 준하는 평화선언 논의는 북미 간에 의견이 좁혀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개의 기둥' 가운데 △미·북 관계 정상화 △한반도 영구적 평화체제를 구체적으로 진전시키는 의미가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일각의 평가에도, 종전선언은 평화체제로 가는 입구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1953년 이래 66년 동안 지속된 북미 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불가침조약 체결, 북미 수교로 이어지면 사실상 한반도 평화체제가 완성되는 셈이다.
美 매체 "영변 핵시설 동결, 대북제재 일부 완화 잠정 합의"
이 같은 거래품목들을 북미가 언제, 어떻게 교환할 것인지를 로드맵에 담아내면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얻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인터넷매체인 복스(VOX)가 26일(현지시간) 북미가 영변 핵시설 동결과 대북제재 일부 완화를 비롯해 평화선언 체결,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미군 유해 추가 송환 등에 잠정 합의했다고 보도해 관심을 모은다.
이 매체는 북미 실무협상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미국은 남북 경협에 관련된 유엔 제재 완화를 추진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실무협상에서 도출한 잠정 합의안이 실제로 이렇다 하더라도, 최종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 첫날인 27일 오후 6시 30분(한국시간 8시 30분)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 호텔에서 일대일 단독 회담과 친교 만찬을 시작으로 8개월 만의 재회를 시작한다.
백악관이 발표한 일정에 따르면 6시 30분 재회한 두 정상은 10분 간 인사와 환담을 나눈 뒤 6시 40분부터 20분 간 단독 회담을 갖는다. 이어 7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3+3 만찬'을 진행한다.
미국 측 배석자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이, 북한 측 배석자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또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예상된다.
이날 단독 회담과 만찬 결과에 따라 정상회담 이튿날인 28일에 공개될 '하노이 선언'의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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