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의 권위가 밑둥채 흔들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이른바 '이변'의 연속이다. 세계 최강이라는 FIFA랭킹 1위 프랑스가 이번 월드컵 개막전에서 42위인 세네갈에 1대0으로 지고, 20위 덴마크에게도 2대0으로 졌다. 24위인 우루과이와는 0대0으로 비겼다. 결과는 16강 탈락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2위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아르헨티나는 27위인 나이지리아에게 1대0으로 간신히 이겼을 뿐, 12위인 영국에게는 1대0으로 패했고, 19위인 스웨덴과는 1대1로 비겼다. 결과는 역시 16강 탈락으로 고국행이었다.
5위인 포르투갈의 성적을 보면 13위인 미국에게 3대2로 졌고, 40위인 한국에게도 1대0으로 졌다. 38위인 폴란드에게만 4대0으로 이겨 조별 리그를 끝으로 짐을 쌌다.
6위인 이탈리아는 21위인 크로아티아에게 2대1로 패했고 7위 멕시코와 1대1로 비겼다. 7위 멕시코는 16강에는 조1위로 올랐지만 13위 미국과의 16강전에서 2대0으로 완패해 집으로 가야 한다.
4위인 콜롬비아는 아예 월드컵 본선에 나오지도 못했다. 9위 네덜란드도 마찬가지고 10위 유고슬라비아도 본선에 나오지 못했다.
오직 FIFA랭킹 공동 2위인 브라질만 이름값을 하고 있다. FIFA랭킹 10위권에서 6위 이탈리아, 7위 멕시코, 8위 스페인 그리고 브라질 4개팀만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오늘 6위인 이탈리아와 22위인 터키는 각각 40위인 한국과 32위인 일본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내심 전정긍긍하는 형편이다.
***FFIFA랭킹은 '명예점수'에 불과**
FIFA 랭킹 우등생들의 이러한 성적표를 보고서도 모든 게 '이변'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FIFA 관계자에 따르면 '이변' 운운 하는 것은 언론의 무지, 축구팬들의 무지 탓이다. 축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FIFA랭킹은 '명예점수'일 뿐이었다.
이 관계자는 "FIFA랭킹은 FIFA 내부에서만 아는 방식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실제 실력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상식적으로 볼 때 한달마다 갱신되는 FIFA랭킹이 실력에 따라 매겨지는 점수라면 어떻게 갑자기 42위인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길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들기를 바란다는 것은 40등이 갑자기 '쪽집게 선생'에게 과외를 받아 16등안에 들라는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하는 소위 '매스컴 전문가'들이 많았다.
FIFA랭킹이 학생들이 매달 치르는 실력고사에 따른 등수에 비교될 수 있다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팀은 자기보다 등수가 높은 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했다. 한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런 모습을 지켜본 축구팬들 중에는 "이 모든 것이 히딩크 감독의 능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FIFA 랭킹 계산법**
FIFA 랭킹은 지난 93년 FIFA가 코카콜라사의 지원으로 2백3개 FIFA 가맹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축구실력을 점수화해 랭킹을 매김으로써 전력 판단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됐다.
랭킹포인트는 일단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A매치)를 기준으로 한다. A매치 중에서도 △월드컵 본선경기 △월드컵 지역예선경기 △대륙별 선수권대회 △대륙별 선수권대회의 예선전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평가전이 대상이다.
이런 대회에서 한 나라의 축구대표팀이 어떤 성적을 거뒀느냐에 따라 랭킹포인트가 달라진다. 랭킹포인트가 주어지는 요소들은 △승·무·패 △득실점수 △홈경기와 원정경기 △경기의 중요도 △상대팀의 전력 △그 경기가 유럽 남미 아시아 북중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어느 대륙 축구연맹의 주최로 열렸느냐 등이 있다.
즉 A대표팀이 B대표팀과 A매치를 가졌을 때 우선 그 경기가 월드컵이냐 아니면 대륙별 선수권대회냐 평가전이냐의 중요도에 따라 배당되는 랭킹포인트가 다르다. A팀이 B팀을 누르고 이겼을 때에도 B팀의 전력이 강하냐 약하냐, 홈경기와 원정경기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골을 넣으며 이겼느냐에 따라, 또한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최한 것이냐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이 주최한 경기냐에 따라 FIFA가 주는 랭킹포인트가 각각 다르게 계산된다.
이처럼 수백가지의 요소들을 고려해 보통 한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랭킹포인트는 10∼30점이 주어지며 최근 8년간의 누적 랭킹포인트로 순위가 결정된다. 이와 함께 평가전의 중요도가 1이라면 월드컵본선경기는 그 두 배로 중요도가 높게 책정되어 있어 높은 랭킹포인트가 주어지기 때문에 큰 대회에서 승수를 쌓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FIFA의 랭킹포인트는 마르쿠스 람프레트와 한스페터 스탐, 두 명의 박사가 만든 컴퓨터 랭킹포인트 계산 프로그램에 따라 계산이 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FIFA랭킹은 유럽을 중심으로 FIFA임원들과 자주 눈도장 찍으면 높게 나와"**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세네갈은 인구 1천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1천6백50달러의 가난한 나라다. 따라서 국가대표팀끼리 하는 축구시합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갖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세네갈은 자신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FIFA랭킹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FIFA 관계자의 해명이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세네갈보다는 부자인 튀지니는 세네갈보다 A매치를 자주 가져 일본보다 높은 30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이번 조별 리그에서 H조 꼴지로 16강은커녕 1승도 올리지 못하고 탈락했다. 32위인 일본은 H조에서 23위 벨기에, 27위 러시아를 뒤로 한 채 조1위로 16강에 올랐다.
또한 FIFA 관계자에 따르면, 단순히 A매치 경기에 따른 점수만이 아니라 가맹국의 경기장 시설, FIFA 조직에 대한 기여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FIFA랭킹포인트에 반영된다.
한 시사평론가는 "FIFA랭킹이란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을 중심으로 FIFA임원들과 자주 눈도장을 찍으면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FIFA라는 조직은 모든 것이 주먹구구식으로 되는 복마전 같은 곳"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한국팀, "5위도 이겼는데 6위를 못이기랴"**
오늘 밤 우리 팀과 겨루는 이탈리아팀은 선수들간의 내분설로 뒤숭숭해 그나마 갖고 있는 전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 팀이 FIFA 랭킹 6위라는 숫자에 기죽을 필요 없다는 증거다.
이탈리아보다 랭킹이 하나위인 5위의 포르투갈 팀도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심판에게 폭행을 했으며, 하프타임때에는 우리 팀과 '비기자'는 제의까지 했다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FIFA랭킹의 허구성을 들여다 보면 오늘 한국팀이 이탈리아를 꺾는다면 이것을 과연 '이변'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당연한 실력으로 봐야 할까. 아마도 답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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