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샐리 젠킨스가 11일(현지시간) 2002월드컵 개최국인 한국 국민들이 발산하고 있는 반미감정에 무감각한 미국인들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젠킨스는 "한국축구대표팀이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떠뜨린 후 안정환 선수 등이 펼친 '오노 세리모니'와 거의 모든 한국의 축구팬들이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질서정연한 응원을 펼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여기에 숨어 있는 정치적 의미를 간과한다면 미국은 전세계에 잠재된 적들에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추악한 미국인들에게 사태는 더욱 추악해지고 있다(Things Are Getting Uglier For the Ugly American)'라는 제하의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추악한 미국인들에게 사태는 더욱 추악해지고 있다'**
지난 월요일 새벽(현지시간) 미국팀이 개최국인 한국과 1대1로 비긴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생생하고 집요한 반미감정의 현장도 함께 보았다. 소위 '오노 세리모니'로 불리는 그들의 골 세리모니가 그것이다.
대구 월드컵경기장에 6만명이 넘는 축구팬들이 빨간옷을 입고 얼굴에도 붉은 페인트 칠을 한 채 내뿜는 열기에 대해 미국팀 브루스 어리나 감독은 그저 "홈 어드벤티지(장점)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열기는 축구장 난동꾼이나 차량에 불을 지르는 스킨헤드들의 광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술김에 화가 치민 폭도들의 행태도 아니었다. 오노 세리모니에서 축구, 또는 스포츠에 관한 얘기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건 강력한 동맹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한국)에서 드러난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미국에 대한 분노에 관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절제되고 일치된,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이 분노를) 드러냈다.
한-미전의 오노 세리모니에서 드러난 통렬한 분노가 한국-포르투갈 경기에서도 재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대단한 자기기만이다.
안정환 선수는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강탈 사건에 대해 미국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은 골 세리모니를 통해 국민들의 감정을 풀어주고 싶었다"면서 "우리가 이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의 반미감정은 무엇을 향한 것인가? 그건 아마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을 미국이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데 대한 분노일 것이다. 그게 철강 관세일수도 있고 축구일 수도 있고 스케이트 경기에서의 오심일 수도 있다. 오노 해프닝에 대한 미국 감독 브루스 어리나의 반응을 보라. "저게 무엇이지? 스노우보딩인가?" 이게 미국식 표현이다. 얼핏 으시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런 반응은 상대방에 대해 근본적 이해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미국사람들은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미 51전투비행단이 한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들은 이것을 일종의 주권침해로 간주한다. 미국사람들 입장에서는 좋은 뜻으로 했다고 생각해도 상대방은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알 카에다가 미국 내에서 핵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날, 한-미전이 열렸다. 전세계 도처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적들이 깔려있다는 새로운 느낌을 갖고 있는 미국인이라면 우리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떨칠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연결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할 시점이다.
월드컵 한미전을 보면서 정치적 의미를 지닌, 또다른 원한의 경기(grudge match)가 떠올랐다. 1895년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백인들 사이에 벌어진 미식축구 경기가 그것이다. 당시 칼라일(Carlisle) 인디언 학교는 미식축구팀을 만들어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 미국대학 팀들과 맞붙었다.
인디언들은 하버드대 코치인 카메론 포브스의 백인우월주의적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경기에 나선 것이다. 포브스는 "미식축구는 앵글로 색슨족의 위대함의 표현이다. 미식축구는 위대한 종족의 위대한 정신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인디언들은 팝 워너를 감독으로 영입했는데, 그는 후에 인디언팀을 최고의 명문팀으로 키워냈으며 존 기욘, 베머스 피어스, 짐 도프 등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했다.
인디언팀 코치인 워너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칼라일는 아무런 전통이 없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진정한 종족적 자존심과 함께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원주민들도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정복자 백인들에 대해 원한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은 백인과 원주민과의 무력대결은 결코 동등한 조건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인디언팀의 한 선수는 워너감독에게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당신들 같은 백인들이 이기면 전투(Battle)이고, 인디언들이 이기면 대량학살(Massacre)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 차리고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각 팀의 전술뿐만이 아니라 축구 경기 뒤에 숨어있는 열정과 정치적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다른 것을 무심하게 대했듯이, '축구는 축구일 뿐이야'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NBA 경기를 보고 나서 잠자리에 들어 편안하게 잠들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세상이야 어찌 되건, 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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