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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자행중인 '관중 꿔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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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자행중인 '관중 꿔오기'

월드컵조직위 '면피행정', 전경 등 1등석 공짜관람

월드컵 취재를 위해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있는 국제미디어센터에서는 최근 'rent-a-crowd'라는 어휘가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국제미디어센터에서 매일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정례 브리핑 시간에 얼마전 한 외신기자가 "rent-a-car도 아닌 rent-a-crowd가 있었냐"고 물으면서부터 이 단어는 월드컵한국조직위원회(KOWOC)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송곳'이 되고 있다.

'rent-a-crowd'를 우리말로 풀면 '꿔온 관중'쯤이 된다. 요컨대 그 기자는 한국에서 열린 일부 경기에 관중 동원이 있었는지 여부를 물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KOWOC 관계자는 "사실이지만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는 궁색한 해명을 했다.

'강제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치 않다. 그러나 TV를 통해 휑하니 비칠 공석을 메우기 위해 초·중·고생, 또는 자원봉사자, 심지어 경찰들에게 붉은 악마 옷을 입혀 관중석에 앉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한 장에 최소한 십수만원씩 하는 입장권 없이 세계적 축구제전을 구경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자원봉사자'가 줄을 섰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제성'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입장권을 사고 들어온 관람객들은 '누구는 봉이냐'는 분통을 터뜨리게 하고 있다.

***전경, "빈자리 메우라는 지시에 따랐을 뿐"**

지난 8일 중국-브라질전이 열린 제주도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도 진귀한 풍경이 벌어졌다. 제주공항 소속 전투 경찰 1백여명 등 총 5백여명의 경찰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경기장 관중석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경기 시작 20여분후 왼쪽 골문 뒤편 관중석 출입구로 슬그머니 줄 지어 들어와 경기장 내 공석을 찾아 메웠다.

이들은 붉은 티셔츠만 상의로 입었을 뿐 하의는 전투경찰 복장 그대로였다. 신발 역시 군화였다.

제주공항 소속이라고 밝힌 한 전투 경찰은 "외곽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으로 들어가라는 상부 지시가 떨어졌다"며 "붉은 티셔츠를 나눠 입고 공석을 찾아 앉으라는 지시를 받아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당초 제주는 10만명에 이르는 중국축구팬(치우미)들이 쇄도, 엄청난 '중국 특수'를 기대했었다. 당초 조직위는 치우미 티켓 수요를 맞춰주기 위해 국내팬들이 구입한 입장권을 2배 가격으로 다시 사들여 중국에 팔려고까지 했었다.

그런데 바이롬의 횡포 등으로 경기시작 전까지 경기장 곳곳은 비었고, 이에 TV화면에 텅 빈 좌석이 비칠 것을 우려한 제주시의 긴급 요청으로 전경들만 '예기치 못한 횡재'를 하게 된 것이다.

***공짜 관중은 1등석 차지, 돈낸 관중은 3등석**

10일 저녁 폭우 속에서 치러진 전주에서의 폴란드-포르투갈전을 지켜본 시청자들이라면 "뭔가 이상한데..."라는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관람석이 거의 빈 자리 없이 가득 찬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문에 대한 답은 역시 '관중 꿔오기'였다.

월드컵조직위 전주운영본부에 따르면, 전주에서 열린 지난 7일(스페인-파라과이)과 10일(폴란드-포르투갈) 경기에 대량의 공석이 발생하자 각각 2천여명과 3천여명의 학생들을 동원해 무료 입장시켰다.

'관중 꿔오기' 사태가 목격되자 비싼 표를 구입해 입장한 관람객들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이에 항의하는 글을 전주시 홈페이지 등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한 네티즌은 "수만원을 들여 3등석 표를 겨우 구입해 관람했는데 무료입장한 관객들이 1등석을 차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티켓을 산 관람객들은 '봉'이냐"고 항의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입장권 해외판매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한국월드컵조직위와 도교육청간 합의에 따라 무료입장이 이뤄진 것 같다"면서 "공석을 메우기 위한 동원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월드컵조직위의 '면피행정'**

이 관계자의 말처럼 개막전과 중국전 등 매진됐다던 경기들도 정작 경기 당일에는 몇천석에 이르는 대량 공석이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공석 사태에 대해 월드컵 조직위는 축구팬들의 호응이 적은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개막 하루 전에 월드컵 입장권 해외판매대행사인 영국의 바이롬사가 10여만장을 한꺼번에 못팔았다고 떠안길 때까지 손을 놓고 있던 한국조직위는 과연 '무죄'일까.

정작 축구팬들을 화나게 하고 있는 것은 경기 시작 직전까지도 입장권 판매 현황파악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조직위의 주먹구구 행정이다.

이런 주먹구구 행정은 '바이롬 사태'의 진상이 알려진 후 월드컵조직위가 대책을 수립했다고 호언했던 지난 4일 경기 이후에도 계속 목격됐다.

한때 정상가의 10배를 웃돌았던 중국전 티켓이 남아돌아 지난 4일 중국-코스타리카전이 열린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웃지못할 풍경이 잇따랐다.

입장권 판매 결과에 따르면 3만9천여석의 광주경기장은 빈 자리가 없어야 마땅했지만 2만7천여석밖에 차지 않았다. 이는 지난 2일 열린 스페인-슬로베니아전(2만8천여명)보다 못한 수치였다. 그후에도 상황은 전혀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껏 바뀐 게 있다면 TV화면에 뻥 뚫린 좌석을 메우기 위한 조직위의 '관중 꿔오기' 전술의 등장일 뿐이다. 철저한 면피행정이다.

주최측인 FIFA에 대해서는 큰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면서 책임을 엉뚱하게 국내 축구팬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월드컵조직위와 대한축구협회의 궁색한 변명에 축구팬들은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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