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가가 맥을 못추고 곤두박질치고 있다. 월드컵이 개막된 31일 종합주가지수가 800선 이하로 붕괴했을 정도다. 코스닥지수도 연일 연중 최저치를 기록중이다.
'월드컵 특수'를 기대했던 투자가들은 크게 낭패해 하는 분위기고,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집권당도 새로운 악재 출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월드컵 축제에 재를 뿌리고 있는 주범은 다름아닌 미국 달러화이다.
***거듭되는 달러 폭락**
미국 달러가 2개월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로, 파운드, 엔 등 세계 주요통화에 대해 모두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 원화에 대해서도 맥을 못추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유럽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유로에 대해 16개월만에, 엔화에 대해서는 6개월래 최저치, 파운드화에 대해서는 7개월래, 스위스 프랑에 대해서는 29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뉴욕 외환시장에서도 유로는 달러당 93.76센트로 거래를 마감했고, 한 때 16개월래 최고인 94.16센트까지 올랐다. 엔화에 대해서는 달러당 122.86엔까지 떨어졌다가 123.27엔으로 약간 회복돼 거래를 마감했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도 급등, 30일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져온 원·달러 환율 1,230원선이 무너져 1,229.50원으로 거래를 마쳤고 31일에도 원화 오름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2000년 12월이래 17개월여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당연히 기업들은 크게 당황해하고 있으며, 그 결과 주가는 급락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미 연준 이사, "달러가 이나마 버티고 있는 이유는 나에게도 미스테리"**
외환전문가들은 "이미'강한 달러'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있다.
평소 개인적 의견을 말하길 꺼려해온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의 로버트 맥티어조차 이례적으로 30일 "최근까지 달러가 이나마 버티고 있는 이유는 나에게도 미스테리"라고 말했을 지경이다.
미 백악관의 로런스 린지 경제담당 보좌관은 30일 "부시 행정부의 달러화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전문가들은 이 말을 믿지 않고 잇다. 미 정부가 급격히 확대되는 무역수지 적자와 디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뉴욕 MG파이낸셜의 수석외환분석가 애시러프 레이디는 "이달 들어 백악관에서 달러정책에 대한 입장을 두 번째 언급한 것이지만 '강한'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달러 하락'에 대해 유연한 입장임을 보여준다"고 정반대로 해석했다.
***달러 하락은 기정사실, '언제 얼마나'가 관건**
미국은 지난 수년간 강한 달러 덕을 톡톡히 보아왔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 막대한 해외투자가 들어오고 부담없는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강한 달러 덕분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큰 우려없이 오직 경제의 견고한 성장을 위한 정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난해 경기 둔화와 9.11 테러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상대적인 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기대보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더딜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선전해 왔던 달러가 이제 일제히 '팔자'의 대상이 된 것이다.
4C캐스트 파이낸셜의 투자상담가 앨런 러스킨은 " 그동안 시장은 항상 아직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식으로 낙관했지만 이제 입장을 완전히 바꿔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에 대한 전망이 이처럼 비관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미 기업 수익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는 데다가, 연방예산도 적자로 돌아서 미 정부가 경상수지 적자를 더 이상 메우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즉 '쌍둥이 적자'라는 80년대의 악몽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의 확산이다.
한 투자전략가는 "쌍둥이 적자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점이 달러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 주요원인이며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 채권시장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 패너고라 자산운용사 수석 투자상담가 에드거 피터스도 "우리는 이미 전환점을 지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 방향성 찾을 때까지 주가 혼미할 듯**
달러 약세로 초래될 최악의 시나리오는 외국인투자가들의 미 자산 매각으로 달러약세가 심화되고, 그 결과 해외투자가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또다시 자산매각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달러하락이 점진적으로 이뤄진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환시장 분석의 최고권위자로 꼽히는 골드먼 삭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윌리엄 더들리는 30일 다우존스와의 인터뷰에서 "달러는 현재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어 달러 급락은 불가피하다"며 "단지 언제 일어날지 알기 힘들 뿐이다"고 경고했다.
그는 "달러가 하락하면 긴축통화정책을 쓰고 싶어도 도리어 이같은 정책이 경제성장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달러가 급락한다면 지속적이고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회복이라는 미국의 경제성장 전망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약한 달러가 미 경제에 부정적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수출업자나 다국적기업들은 미 정부에게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할 것을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달러화의 약세 국면 진입은 기존의 세계경제 질서에 일대 재편을 의미한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상당기간 세계경제는 새 방향성을 찾을 때까지 안개국면으로의 진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월드컵이 개막되는 31일 우리나라 증시가 종합주가지수 800선 붕괴라는 타격에 휘청거리는 것도 이런 불확실성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인 8백선이 붕괴한 만큼 760선까지 밀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오나가나 미국이 문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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