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에 국제사회의 원조가 줄을 잇고 있지만, 대부분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집중돼 있어 외곽 지역 주민들의 박탈감이 극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16일(현지시간) <AP>통신은 포르토프랭스에서 서쪽으로 약 18마일(약 2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레오간이라는 소도시에서 "수도에 도움이 몰리고 있는 시간에 수도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피해를 입은 시골 지역은 방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 ⓒ로이터=뉴시스 |
수도에 집중된 지원에 지역민들 분노
28세의 필립 피에르는 "경찰서에 아무도 없다. 구조대는 본 적이 없다"며 "그들이 우리 목소릴 듣지 않는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울부짖었다.
보도에 따르면 레오간에서는 절망감에 빠진 마을 남자들이 마체테(날이 넓은 아프리카 전통 칼)와 곤봉을 들고 모여들어 "세계가 잊은 마을"을 위해 싸움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레오간과 수도를 잇는 붕괴된 해안 고속도로 위에는 도움을 구걸하는 난민들이 수두룩했다.
또한 레오간 도심은 각종 파편의 잔해물들이 전선과 뒤엉켜 흡사 종말 영화의 세트장처럼 보였으며, 두 개의 공동묘지가 수도로 가는 길을 형성하고 있는 등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AP>는 보도했다.
▲ 트럭에 실은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아이티 지진 피해자들 ⓒ로이터=뉴시스 |
이 지역은 구호물자 소외로 인한 절망감은 물론 의심으로 가득 찬 상태다.
주민들은 포르토프랭스 교도소로부터 풀려나온 범죄자들, 굶주린 약탈자들 등 외부로부터 유입된 이들에 맞서 마을의 보건소 겸 피난처를 방어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파원은 "이 사람들은 폭력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흉기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또 "레오간에서는 이웃들이 서로 망을 본다"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상황임에도 다른 이들이 폭력을 사용하면 어쩌나 의심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다. 51세의 막시밀리언 알프레드는 "국제기구가 아이티 정부에 돈을 준다면 우리는 거리를 점거할 것이다"라며 "정부는 그 돈으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안 할 것이다"고 말했다.
식량난·물가 상승 등 제 2의 혼란 가중
16일 이 지역에 처음으로 유엔이 원조하는 식료품이 선박 편으로 도착했으나, 양이 턱없이 부족해 한동안 식량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유통할 물자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나마 구할 수 있는 물품도 가격이 올라 주민들의 생활고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50파운드짜리 쌀 가격이 지진 전 27.5달러에서 25%올라 34달러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구호물자 배급이 더뎌지면서, 안 그래도 분노로 가득 찬 주민들이 식량창고를 약탈하는 등 폭도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지의 한 서방측 언론인은 "구호품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것이 예사고 천신만고 끝에 확보한 구호품을 지키기 위해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도 목격됐다"고 전했다.
▲ 한 여인이 식료품을 약탈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아이티 바깥에서의 구호도 필요
이렇듯 아이티 내부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미국 등 해외로 탈출하는 난민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15일 미국 해안경비대 마릴린 파자도 대변인은 "아이티인 불법 입국자들이 급속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파자도 대변인에 따르면 현재로선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고, 해안경비대의 조치가 취해지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매년 수백 명의 아이티인들이 조악한 배를 만들어 미국 플로리다로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가 상당수가 바다에서 숨지는 등의 사고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진으로 미국의 해안 경비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본토에 머무르는 아이티인 불법 이민자들에게는 앞으로 18개월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하는 '임시보호신분(Temporary Protected Status)'이 부여된 상태다. 16일 미국 국토안보부의 재닛 나폴리타노 장관은 "미국에 체류중인 아이티인들이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에 되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이 같은 특별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혜택 대상은 지진이 발생한 지난 12일 이전에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아이티 국적인으로 한정된다.
한편 캐나다 정부는 14일 아이티 난민 구호대책의 일환으로 이들의 캐나다 이민 및 난민을 적극 허용하고 정착을 지원하겠다는 특별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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