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52)이 20일 마침내 해외도피에 성공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6개월짜리 체류허가를 얻는 데 성공한 데 이어, 미 정부 보호아래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최 전 과장의 해외도피 소식을 접한 국민 여론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것이다. 최 전 과장이야말로 '최규선 게이트'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핵심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청와대 등 권력층의 김대중 대통령 3남 김홍걸씨 비호 및 진실은폐 시도의 주역이라는 강한 의혹을 사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검찰 등은 그가 해외로 빠져나간 지난 14일 이래 그가 미국에 도착해 증발할 때까지 엿새간 그에 대한 아무런 사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가 미국에 합법적으로 도피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최 전 과장의 도피가 권력의 조직적 비호 아래 단행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미 정부의 대응도 의혹투성이다.
최 전 과장이 20일 오전 미국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최씨를 상세 입국대상자로 분류했던 미국 국무부 산하 이민국은 3시간동안 그를 조사한 뒤, 보안요원까지 붙여 정식 입국심사대가 아닌 별도의 내부직원용 출구를 통해 빼돌렸다. 말 그대로 철저한 보호조치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한국 집권세력 보호를 위한 모종의 공조체제를 작동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국정부가 최근 미국 보잉사의 F15 구입, 마이크론에의 하이닉스 매각, 대우자동차의 제너럴모터스(GM)에의 매각 등 일련의 미국익 우호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들은 지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가**
단언컨대 최성규의 미국도피 성공은 현 정권 입장에서 본다면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지는 대목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최성규가 만약 미국도피에 실패해 국내로 소환될 경우 그가 몰고올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성규 미국도피 성공이 국내의 비리연루 혐의세력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가는 최씨 도피 성공직후인 21일 밤 검찰에 소환된 이만영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비서관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최규선씨가 "최성규를 통해 '밀항 도피'를 사주했다"고 폭로해 물의를 빚고 있는 인물. 이 비서관은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혐의 사실을 극구부인하며, 검찰이 최규선의 일방적 주장을 흘린 데 대해 도리어 검찰을 꾸짖었다.
최성규 도피로 모든 의혹이 안개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최성규 도피로 수사가 몇배나 힘들어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성규야말로 권력의 조직적 비리 개입 의혹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증인인 까닭이다.
***검찰ㆍ경찰ㆍ청와대의 '조직적 도피 방조(?)'**
문제는 최성규 비리 의혹이 드러난 지 거의 한달이 다 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ㆍ검찰ㆍ경찰 등 정부는 지금까지 최성규에 대해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성규의 이름 석자가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달 28일의 일이다. 최규선의 전 운전기사 천호영씨가 지난달 28일 경실련 사이트에 게재한 '최규선의 비리'라는 글에서 최성규 당시 특수수사과장이 최규선과 손을 잡고 강남 C병원 비리 은폐, S건설 유사장 청탁수사 등 각종 비리를 범했음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천호영씨의 폭로 내용이 워낙 구체적인 까닭에 처음부터 최성규 특수수사과장의 범법 혐의는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규선 게이트의 수사를 담당한 서울지검 특수2부나 자체 감찰의무가 있는 경찰은 미묘한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명재 검찰총장이 주도하는 검찰은 그동안 국민의 큰 기대를 모아왔다. 그러나 이번 최성규 과장의 미국도피 과정에 검찰이 보여준 태도는 의혹투성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최규선 게이트 수사에 착수하며 최규선 등 7명, 이어 추가로 11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어이된 일인지 정경유착의 핵심축인 최성규 과장만은 예외였다. 검찰은 현재 최 과장 도피와 관련,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 한마디로 빠져나갈 상황이 아니다. 검찰은 지금까지도 최 과장에 대해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재 검찰의 좌절인가. 지금 여론의 의혹이 짙어가고 있다.
경찰도 손 놓고 있기란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최성규 과장이 13일까지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감찰조차 하지 않았다. 10~12일 세차례에 걸쳐 최 과장과 최규선 등이 강남 모 호텔에서 대책회의를 한 사실이 13일 KBS TV뉴스에 특종보도되고 다음 날인 14일 오전 최 과장이 인도네시아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보인 대응은 출근을 종용하다가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는 추적팀을 인도네시아로 보내는 것에 그쳤다. 경찰은 최 과장이 미국으로 안전하게(?) 빠져나간 20일에야 최 과장을 근무지 이탈 혐의로 파면조치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과장 검거에 결정적인 수배조치는 안했다. 만약 경찰이나 검찰이 지난 20일이라도 뒤늦게 영장을 청구해 그를 인터폴에 수배했다면, 미 이민국에게는 최씨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명분이 없어졌을 것이다. 경찰청은 최씨가 미국도피에 성공한 후인 22일 이후에나 최씨를 수배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청이 조직적으로 최씨의 미국도피를 도운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최씨는 2000년 1월 현정부의 실세중 하나였던 이무영 당시 경찰청장에 의해 특수수사과장으로 임명된 경찰권내 호남 인맥의 대표주자중 하나다. 그는 업무의 특성상 그후 청와대와 자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도피 직전에도 청와대 비서관 두명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의 미온적 대처의 배경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미국, 최 과장을 '볼모'로 확보한 게 아닌가**
이같은 국내세력들의 조직적 은폐 의혹 못지 않게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미국 정부의 대응이다.
14일 당시 인도네시아로 도망갔던 최성규 과장은 그후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을 경유해 20일 미국으로 향했다. 최 과장은 왜 최종 도피지로 미국을 택했을까.
미국은 입국하기가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만약 최 과장에게 인터폴을 통해 수배조치만 내려졌어도 미국은 최 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미묘하게 최 과장에게는 한국정부의 그 어떤 수배조치도 내려지지 않아 미 정부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일 미국 정부가 케네디 공항에서 보여준 모습은 '예상 밖의 과잉보호'였다. 3시간에 걸친 조사끝에 보안요원의 인도에 따른 공항 극비 탈출이라니...
국내 일각에서는 미 정부가 최 과장을 '볼모'로 확보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 과장은 현재 한국정권의 명줄을 쥐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아킬레스건을 미국정부가 확보한다는 것은 국제외교 측면에서 볼 때 더없는 성과일 수 있다.
양측 시각이 다르거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에 대해 이같은 카드를 들이밀 경우 더없이 유리한 협상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F15 구매를 최종확정짓기 위한 대통령 재가를 비롯해 대우자동차, 하이닉스, 민영화 발전소의 매각 등 예민한 현안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미국의 2백년 외교사를 돌이켜볼 때, 해외의 부패세력은 언제나 미국의 밥이었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 미국의 호구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앞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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