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종합병원의 원장은 14일 <로이터> 통신에 "질병으로 인한 보건상의 위협이 또 다른 대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병원의 시체안치소는 빠르게 부패해 가는 1500구 이상의 시체로 포화 상태다. 시체가 태양 아래 뉘인 채로 그저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썩어가는 것은 시체만이 아니다. '산 사람'들도 부패한 몸으로부터 나오는 악취를 막기 위해 얼굴에 넝마나 마스크를 걸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진 발생 사흘째임에도 현지 상황은 좀처럼 수습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워낙 막대하거니와 아이티 행정부가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진 이후 아이티에는 행정과 치안 공백 상태가 이어져 왔다. 대통령궁과 정부 기관 건물들이 파괴됐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종적을 감췄다가 14일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9000명 규모의 UN 평화유지군도 지진 앞에 무력했다. <로이터>는 지진으로 본부 건물을 잃은 UN 평화유지군은 UN 내부의 희생자를 헤아리는 데 치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종합병원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다. 정부로부터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간호사, 의료 팀, 모든 것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진도 7.0의 강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 ⓒKate Conradt / Save the Children |
시민들 스스로 실종자 찾으러 다녀… 분노로 '엽기 행각'도
아이티 사람들은 건물 잔해가 산재한 거리와 공원에서 스스로 임시 병원 시설과 난민 캠프 시설을 짓고 있으며, 이러한 혼란 속에 아이티 공직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로이터>는 르네 프레발 정부는 취약하고 자질이 부족하다며 "이러한 위기를 다루는 데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19세의 장 말레스타는 프레발의 대통령궁 반대편 공원에 텐트를 세우며 "우리를 봐라. 누가 우릴 돕고 있나? 지금 당장 아무도 없다. 우리는 우리만의 힘으로 서 있다"라며 울부짖었다.
무능한 정부는 피해자들을 스스로 시체와 실종자들을 찾아 나서게 만들고 있다. 시민들은 맨손이나 망치, 막대기 등의 단순한 장비를 이용해 파묻힌 생존자를 구해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급기야 14일 포르토프랭스 시내 몇 곳에서는 사망자의 시신으로 벽을 쌓아 길을 막는 끔찍한 풍경이 연출됐다. 일부 시민들이 구호물자 조달 지원에 불만을 터트려 '항의'한 것이다.
치안 상태도 엉망이다. <CBS>방송은 시민들이 흉기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상점을 약탈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이들을 막아야 할 경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구호단체 옥스팜의 세드릭 피러스 대변인은 "밤이 위험하다"라며 "약탈이 만연해 있고 몇몇 상점들은 완전히 털렸다"라고 말했다.
▲ 수도 포르트프랭스와 인근에 있는 건물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됐다. ⓒKate Conradt / Save the Children |
아이티 대통령 "시체 7000구 매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14일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는 레오넬 페르난데스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과 함께였다.
이 자리에서 프레발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이미 집단 매장지에 시신 7000구를 묻었다"고 자신이 들은 보고 내용을 밝혔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시신 매장을 돕는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전체 사망자 수를 파악하는 데는 일주일 이상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욜레트 아조르-샤를 스페인 주재 아이티 대사는 "매일 더 많은 사망자가 발견되고 있다"며 "사망자 수를 파악하는데 최소 8일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조르-샤를 대사는 "피해 복구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이티 현지의 적십자는 이번 지진으로 4만 5000천∼5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