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히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월스트리트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다.
엔론 사태로 엔론의 직원을 비롯해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이 쪽박을 차게 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이제 월가에서는 소액투자자들이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아예 배제시키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논리일까.
***뮤추얼 펀드 최소투자액 2만5천달러**
월스트리트에서 닷컴주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조차 소액투자자들은 ‘봉’이었다.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스톡 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봉급의 몇배가 넘는 돈을 주식시장으로부터 ‘조달’한 결과, 소액투자가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어진 탓이다.
한 예로 트래블러스그룹의 존 웨일 회장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1억5천여만달러를 챙겼다. 이는 1만달러를 주식에 투자한 소액 투자자 1만5천여명의 돈을 합친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제는 1만달러를 들고는 월가의 문을 두드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미국 인구의 1%인 최상류층 2백60만명의 수입이 중ㆍ하층 8천8백만명의 소득과 맞먹는다는 통계를 보듯 지난 80년대 이후 미국의 계층간 소득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가난한 자들은 이제 자본주의의 돈 놀이판에 낄 수도 없게 되었다"며 월가의 달라진 최근 풍속도를 상세히 보도했다.
미국투자은행 골드먼 삭스와 메릴린치는 넘치는 고객들 중에서 소액 투자자들을 배제하는 방법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 그들을 관리하는데 비용은 많이 드는 반면, 수익은 별로 남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더욱 눈여겨 볼 것은 뮤추얼 펀드 회사들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들조차 은밀히 소액투자자들을 고객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펀드회사들은 최소 투자금액 기준을 상향 조정하거나 소액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를 중지하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고객 1인당 수익 기여도로만 따지는 이런 풍토에서 오늘날 소액 투자자는 미래의 워렌 버핏이 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의 돈 놀이판에 누구라도 참가할 수 있다”는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다.
20년간에 걸쳐 미국의 주식시장은 강세를 보이면서 투자자층을 넓혀왔다. 닷컴주의 폭발적 장세는 화려한 시대의 마지막 열기를 불사르며 소액투자자들을 빨아들였다. 그들에게 데이 트레이딩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기본 계좌관리 비용 30~40달러**
그러나 주식시장의 상승기에서도 보통사람들은 뮤추얼 펀드를 통해서 이 축제에 동참했다. 투자기업연구원에 따르면 1980년만 해도 뮤추얼 펀드에 투자한 미국 가정은 6% 미만이었다. 대부분은 주식보다 채권이나 예금에 돈을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1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가정 절반 이상이 뮤추얼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주식시장에도 뮤추얼 펀드의 70%가 넘는 자금이 투자됐다.
진입장벽이 거의 없었기에 이러한 투자 유형은 급속히 증가했다. 1970년대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스커더 스티븐스 & 클라크 등 펀드 회사들이 입회비를 받지 않고 직접 일반인들을 상대로 펀드 판매에 나섰다.
이때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대거 구좌를 개설했다. 그러나 고객이 너무 증가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계좌의 규모와 관계없이 일상적인 계좌관리 등 기본관리 비용만 1년에 1인당 30~40달러가 든다는 것이다.
미국의 펀드 회사들은 계좌의 금액에 대해 퍼센트로 수수료를 매긴다. 따라서 연구, 마케팅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차치하고 기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계좌당 적어도 3천~4천 달러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든 펀드의 창구 거래 최소 투자액을 5백 달러로 정했던 뱅거드 사는 비용 절감에 앞장 서온 회사답게 몇몇 인기 펀드의 최소 투자액을 2만5천달러로 올렸다. 최소 투자액을 25만 달러로 하는 대신 수수료는 대폭 낮춘 특별계좌도 등장했다.
뱅거드사는 계좌의 전체자산이 증가하고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시절이 지나자 일반 고객들에게 거두는 수수료를 올렸다.
인베스코, CSFB와 지금은 도이체 방크로 넘어간 스커더 등은 아예 일반인을 상대로 한 펀드 판매를 중단했다. 그 대신 5%의 수수료를 받는 중개인을 통해서 펀드를 판매할 계획이다.
앤드류 카네기가 교사들의 은퇴 후 소득을 마련해주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기업인 TIAA-CREF의 고민은 소액투자자들이 배제되는 월가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회사는 1997년 정관을 고치면서까지 일반인을 상대로 펀드 판매에 나섰다. 최소 투자액을 2백50달러로 정하고 수수료도 업계 최저 수준이었다.
그 결과 소액 투자자들이 이 회사로 몰려들어 계좌를 개설하고는 빠져나가는 이가 적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회사가 거덜날 판이었다. 결국 TIAA-CREF는 최근 최소 투자액을 1천5백달러로 올렸고 이 금액 또한 더욱 올라갈 조짐이다.
엔론 사태로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징후를 보인다’는 비난에 휩싸인 미국의 경제체제는 이제 ‘빈익빈 부익부’ 현상마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자본주의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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