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런던의 철도파업을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국제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이번 철도 파업으로 열차운행이 평소의 10% 수준으로 감소, 20여만명의 통근자들이 출퇴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한 손실액만 5천만파운드(약 1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런던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인 승객 20여만명의 시간손실과 생산차질액이 하루 1천40만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도 최근 런던의 교통체계의 노후화는 세계 금융.문화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50년간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렸던 런던의 인구는 이후 15년간 7백20만에서 8백60만명으로 늘어날만큼 경제적 활기를 띠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인 런던에 국제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이들의 노동력에 힘입어 런던이 파리보다 더 잘사는 도시가 되었으며, 이제는 유럽의 가장 부유한 도시인 함부르크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런던은 젊은이들의 활기찬 문화, 일류 교향악단, 오페라 하우스, 극장 등을 보유한 유럽의 대표적 문화도시이자 뉴욕과 도쿄와 함께 선진금융도시로 꼽힌다.
그러나 런던의 경제 발전에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얼마전 발표됐듯 사무실 임대료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이고, 집값도 폭등하고 교통시스템은 지리멸렬한 상태다.
특히 런던의 성장 잠재력, 경제의 효율성과 삶의 질 모두가 교통체계의 노후화로 점차 위협받고 있다.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지하철이 극도로 혼잡하고 운행시스템이 불안정한 점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 통근열차도 수시로 연착하고 도심에서는 열차의 속도가 거북이처럼 느리다.
교통시스템의 난맥상이 산업경쟁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수치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금융분야를 중심으로 볼 때 미국과 유럽의 조사기관들은 유럽의 다른 금융도시와 비교하면서 “파리와 프랑크부르트에서 런던의 사정을 보면 비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두가지 주요 원인을 들 수 있다.
우선 1986년 이후 14년간 런던은 도시 전체를 관할하는 행정부가 없었다. 마가렛 대처 전수상이 급진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런던이 운영되지 못하도록 런던의회를 없애버린 것이다.
런던을 대변할 기구가 없어지자 투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새로운 교통개혁안도 기득권 다툼으로 좌초되었다.
두 번째로는 영국의 인구 12%에 해당하는 런던에서 국민소득의 21%를 차지할 정도로 경기가 활발해지면서 기반시설이 이를 뒤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1991년 이래 새로 생긴 72만개의 일자리가 대부분 도심에 몰려있다는 것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현재 런던의 초대 민선 시장인 켄 리빙스톤은 이 혼란을 해결할 법적 책임이 있다. 사무실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빌딩 고도 제한과 용적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교통시설의 대폭적 개선 없이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2000년에 시장에 당선된 리빙스톤은 취임하자마자 4백68쪽에 달하는 교통대책을 발표했다. 2011년까지 그는 런던 도심의 교통량을 15% 줄이고, 수송분담률을 버스 40%, 지하철 17%, 통근열차 40%로 배분해 교통수송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리빙스톤은 뉴욕의 지하철 체계를 운영했던 봅 킬리를 영입해 런던의 교통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도심통행료를 신설하고, 매년 2백88억달러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하는 대책도 내놓았다.
리빙스톤은 도의적으로는 런던 전체를 대표할 유일한 권위를 가졌지만 버스와 주요도로에 대해서만 직접 통제권을 갖고 있다.
간선 철도는 정부의 산하기관인 철도전략공사(Strategic Rail Authority)의 관할이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의 자금지원이 없으면 리빙스톤은 철도와 지하철 개혁프로그램을 위해서 지하철 요금이나 지방세를 인상해야 할 수도 있다. 2004년 재선을 노리는 리빙스톤으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런던 스쿨의 토니 트레버스 교수는“런던의 희한한 책임분산 구조로 도시문제 해결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로서는 철도 개혁을 추진할 돈도 권력도 없고 권력을 행사할 의지도 없다"며 "지금 런던에는 돈과, 권력과 뉴욕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시장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최근 몇 년간 런던의 경제가 영국 전체 평균에 비해 30%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교통체계의 혼란을 극복할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트레버스 교수는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큰 문제는 언제까지 경제발전이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내가 블레어 정부라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에 문제해결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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