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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신화의 이면 <1>

"기자, 당신은 관리되고 있소"

윤태식 게이트가 ‘언론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윤태식 게이트는 부패 고리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언론은 그동안 숱한 자정선언 및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패 고리의 중핵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충격적이다.

이번에 패스21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언론인은 모두 25명이다.
매일경제신문이 5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SBS가 4명으로 두 번째를 차지했고 KBS MBC는 각각 3명씩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조선일보, 서울경제신문, 대한매일, 연합뉴스가 각각 2명씩이며, 이밖에 동아일보와 방송위원회 관계자가 1명씩 뒤를 잇고 있다.
내로라하는 중앙 언론매체가 거의 빠짐없이 걸려든 셈이다.

이들 주식 보유자들 가운데에는 패스21의 장래가 유망하다는 정보를 듣고 비교적 고가로 매입한 이들도 끼어 있어 이들 모두를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문제 삼기란 어려운 대목도 없지 않다. 일부 언론사는 “한두 마리 미꾸라지 때문에 회사 전체가 욕을 먹게 됐다”고 억울해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윤태식 게이트가 ‘한국 언론의 24시’를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사람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러나 과거에도 그러했듯 이번 사건이 몇몇 개인의 도덕성만 문제 삼거나, 아니면 반대로 언론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감성적 접근으로 그칠 조짐을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언론이 직면해 있는 위기는 보다 뿌리가 깊고 대상범위가 광범위한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지는 이에 윤태식 게이트를 계기로 우리 언론이 직면해 있는 ‘위기 구조’를 몇 회에 걸쳐 다각도로 심층 분석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본지는 기자들과 가장 접촉빈도가 높은 기업 및 금융기관, 정부부처의 홍보책임자들과 집중적으로 접촉했고, 이 과정에 많은 놀라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획은 결코 기존 언론과 언론인을 매도하기 작성된 기사가 아니다. 출입처에 나가면 칙사 대접을 받는 기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평가받고 관리되고 있고, 언론사의 광고 및 협찬 압력 등으로 기업이 얼마나 내심 울분을 느끼고 있는가를 기자와 언론사가 제대로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A그룹 홍보실의 극비 자료**

A그룹은 국내 5대 재벌사중 하나이다. 지난해까지 A그룹에서 재직했던 홍보책임자는 A그룹이 평소 출입기자들을 어떻게 분류, 관리하고 있는가를 토로했다. 다음은 그의 전언을 기록한 것이다.

홍길동 AAA+ BB+ C+ D+
이성계 A- BB- C- D-
이몽룡 A◦ B◦ CCC◦ D◦

이 자료는 작성자 외에 그룹 홍보실 임원과 오너만이 볼 수 있다. 월급쟁이 사장에게도 절대로 열람시키지 않는다. 만에 하나 누출되더라도 외부인은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도록 암호처리화돼 있다.
앞에 표시된 홍길동, 이성계, 이몽룡(전체 가명)은 출입기자들의 이름이어서 쉽게 알 수 있으나, AAA+ BB+ C+ D+ 등은 판독 불능이다.

AAA+같은 기호를 보면 흔히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이 매기는 신용등급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그런 신용등급이 아니다.
A는 술자리, B는 골프, C는 촌지, D는 청탁을 뜻하는 암호다.
AAA는 술자리에서 최소한 ‘2차’까지 가며 AA는 1차에서만 마시는 타입이며 A는 술을 싫어한다.
BBB는 거의 매주 골프를 해야 하며 BB는 홍보실이 권유해야 가며 B는 골프를 치지 않는 기자이다.
CCC는 촌지를 무척 밝히며 CC는 촌지를 가려 받고 C는 촌지를 아예 받지 않는다.
DDD는 수시로 출입처에 청탁성 민원을 하는 스타일이며, DD는 때때로 하고, D는 전혀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밖에 알파벳 옆에 붙는 ‘+는 우호적’, ‘◦는 중립적’, ‘-는 비우호적이어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같은 암호체계에 따라 홍길동, 이성계, 이몽룡을 해석해 보면 상대방이 어떤 인물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홍길동은 AAA+ BB+ C+ D+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모두 +등급을 받아, 출입하는 기업에 대해 우호적임을 알 수 있다. 술을 대단히 좋아하고(AAA) 홍보실이 권하면 골프도 치러 나가나(BB), 촌지는 받지 않고(C) 청탁을 한 적이 없다(D). 홍보실 입장에서 보면 같이 술만 자주 마시면 되기에 관리하기 편한 스타일이다.

이성계는 A- BB- C- D-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모두 -등급으로 분류됐다. 출입처에 대해 비우호적인만큼 평소 각별한 관리가 요구되는 스타일이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A) 촌지도 받지 않으며(C), 청탁성 민원도 전혀 하지 않는다(D). 하지만 골프는 홍보실이 권하면 하는 정도다. 홍보실 입장에서 보면 관리하기가 여간 까탈스런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몽룡은 A◦ B◦ CCC◦ D◦로 분류되고 있다. 중립적인 스타일이다. 술과 골프를 싫어하고 청탁도 하지 않지만 촌지는 주는 대로 받는 스타일이다. ‘돈’으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어 홍보실에서 상대하기 대단히 편한 상대다.

홍보실 입장에서 보면 A든 B든 등급이 높은 쪽이 관리하기 편하다. 술을 좋아하든 골프를 좋아하든 촌지를 좋아하든, 단 한 가지라도 ‘트리플’ 등급을 받는 구석이 있으면 치고 들어가 공략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 출입하는 기자는 모두 25명.
이 가운데 AAA는 7명, BBB는 6명, CCC는 8명, DDD는 1명이었다.
반면에 A는 3명, B는 6명, C는 15명이었다.

촌지를 받지 않는 C가 출입기자 25명 가운데 15명이나 된다는 것은 한국 언론이 그래도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증거다. 하지만 아직도 적잖은 숫자의 기자들이 돈과 향응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아직 한국 언론이 더 가열찬 자정노력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B그룹의 일부 자료**

B그룹 역시 A그룹과 마찬가지로 5대 재벌그룹 가운데 하나이다. B그룹은 특히 국내에서도 가장 철저하게 네트워크 관리를 하기로 유명한 그룹이다. 다음은 B그룹의 기자 관리 기록중 일부이다.

박문수=장남 OO 초등교 3학년 2반 담임 박갑돌(가명)-OOO 이사
왕건=처남 OO사 대리-OOO부장 *99년 인사 반영
이승만=부 입원 *조치 완료

어느 정도 짐작은 되지만 역시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렵다.

첫 사례는 박문수(가명) 기자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담임과 OOO이사가 친척임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비상사태 발발시 OOO이사가 담임을 통해 기자에게 부탁을 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박문수 기자는 기사와 관련해 아들의 담임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황당해 한 적이 있다.

두 번째는 99년 전보인사 때 왕건(가명) 기자의 처남인 00 계열사의 대리를 그의 희망대로 부장으로 승진시켜준 경우이다.

마지막 케이스인 이승만은 홍보실이 계열사 병원에 이승만(가명) 기자 부친의 병실을 잡아 준 경우이다.

B그룹이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인물은 언론계를 포함해 각계에 1만3천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B그룹이 로비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다.

***C관공서의 기관장 메모**

A사=예산 조치
B기자=접촉 우호적
C사=별도 집행 중

C관공서 기관장의 메모 중 일부이다. 이 사례는 비교적 간단하다.
A 언론사의 사업을 위해 예산을 확보했다는 뜻이며, B기자와는 별도로 술자리를 가졌고, C사에는 우회적으로 광고 물량을 계속 공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때로는 유관 정부부처나 금융기관 홍보책임자들끼리 정보교환을 위해 한달에 한번씩 정례모임을 갖고 언론대책을 협의하기도 한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D금융기관의 홍보책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모임에 나가보면 출입기자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A기자는 너무 술을 자주 사라고 주문해 괴롭다. 술도 1차로 끝내지 않고 꼭 여자가 나오는 룸살롱까지 가자고 해 뻔한 예산을 쓰는 담당자들은 죽을 맛이다. 반면에 B기자는 양반이다. 1차로 소주만 마시면 그만이다. B기자가 술을 사라면 매일이라도 사고 싶다. 이런 식이다.
A기자의 경우 자신의 이름이 매달 홍보모임에서 거론된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도 다시는 술을 사달라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리 받고 있다”**

기자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기업이나 관공서의 집중 관리를 받고 있다. 관리 방법은 세세하고 치밀하다. 관리에 관한 자료는 일체 외부로 유출되지 않기 때문에 기자들 자신도 거의 모르고 지낸다.
관리에 필요한 각종 영수증은 회사의 감사팀에게도 제출되지 않는다. 관공서의 경우에도 공보실이 사용한 구체적인 판공비 집행내역은 감사나 의회의 결산 심의에서 세세하게 보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대기업의 기자 관리는 극도의 보안 속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경우는 없다. 누출될 경우 홍보실의 ‘수단’이 없어지고 홍보실의 생명도 끝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될만한 상황이 되면 아예 자료를 모두 파기해버리고 나중에 다시 작성한다.

A그룹 홍보책임자 증언에 따르면, 언론사 기자와 간부에 대한 별도의 선물 명부도 있다.
대체로 3등급으로 나누어 명절에 선물을 한다.

A급은 50만원정도 고급제품으로 사장 명의로 한다.
B급은 20만원대, C급은 10만원이하의 과일상자나 건어물 정도이다.
A급은 직원이 직접 배달하며 B, C급은 백화점이나 택배회사에 맡긴다.

***99~2000년 벤처 붐 타고 기자윤리 실종**

윤태식 게이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주주명부도 이 같은 성격이 짙다. 비상장사의 주주명부는 비공개이기 때문에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99년 후반기부터 벤처기업이 붐을 이루며 기자들이 회사 주식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모 벤처업체 사장은 “주식을 달라는 기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고 한다. 반면 한 중앙일간지 편집국 부장은 “경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에게도 주식을 주겠다고 하는 벤처기업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벤처업체가 공무원뿐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주식을 나누어주는 목적은 명확하다. 홍보성 기사가 나오면 덤으로 좋은 일이며 기본적으로는 사소한 일이 발생할 때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다.

96년 개정된 신문협회와 기자협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 14조에는 ‘주식 및 증권정보에 관해 최근에 기사를 썼거나 장래 쓰려 하는 회사의 주식 등의 상업적 거래에 직ㆍ간접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조선일보가 ‘취재 담당 분야의 기업 주식에 대한 직접 투자나 지분 참여를 금지’하는 등 각 언론사도 별도로 보도준칙이나 윤리강령을 제정해 취재와 관련된 회사의 주식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98년 언론사의 정리해고로 장래가 불안해지고 99년 기자들의 벤처행 러시가 일어나자 일부 기자들은 이 같은 규정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는 80년대 말에 건설회사가 주택조합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할 때와 비슷하다.
당시 언론사 기자들을 주택조합에 끌어들이는 일이 허다했다. 서울시청에는 진척이 지지부진한 주택조합에 가입한 기자들의 청탁성 민원이 적지 않았다. 주택값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집을 마련하려는 기자들은 건설회사를 대신해 직접 뛰어다녀야 했고, 건설회사들은 이에 기자만 끌어들이면 크게 손을 쓰지 않아도 문제를 쉽게 해결하곤 했다.

기자들의 민원에 시달리던 서울시의 담당 간부는 기자들에게 “조합에 가입하기 전에 아파트 건립이 가능한지 나에게 미리 물어보고 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무덤까지 갖고 간다 하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

홍보실 관계자들은 “기자 관리 문건은 무덤까지 갖고 갈 절대 비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극비자료를 쥐고 있는 오너가 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렸을 때도 과연 무덤까지 갖고 갈 절대 비밀이 될 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회장의 귀국 추진 소식에 우리나라 각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다.

오너 등이 이를 터뜨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기업의, 관공서의 기자 관리 내역이 불거질 소지가 있다.
윤태식 게이트의 경우도 회사 자체의 보안 문제보다는 윤씨가 15년 전 사건으로 살인용의자로 구속되면서 터져 나왔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언젠가는 엉뚱한 데서 터지는 법이다.
이미 여러 차례 겪은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떳떳하기 위해선 평소 자신을 스스로 엄격히 관리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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