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지폐와 동전이 공식 통용된 지 불과 사흘만인 지난 3일 독일과 아일랜드에서 유로화 위조지폐가 잇따라 발견됐다. 1백50억장의 유로 지폐가 한꺼번에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틈을 타 위조지폐가 대량으로 나돌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유로화가 공식통용되기 직전인 지난해말 유로화의 앞날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통화남발 등의 문제가 아니라 위조화폐의 범람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이 잡지는 유로화의 앞날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밀레니엄 버그처럼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 될 지 모른다고 전제했지만, 지폐 발행 역사를 보면 신 화폐 발행후 혼란을 면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유명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짓는 것은 돈"이라는 말을 남겼다. 돈 중에서 지폐는 내재가치가 없기에 늘 신용의 문제를 안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폐는 통화남발이 가져온 비극과 늘 함께 했다.
1천년전 지폐의 역사를 연 중국도 통화남발로 11세기에 이르러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했다. 중국역사를 연구한 L.C 굿리치는 당시 중국상황이 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러시아의 상황과 비슷했다고 전한다.
13세기 몽골의 쿠빌라이 칸(칭기즈칸의 손자)은 지폐를 강제로 통용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지폐를 유통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자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지폐 유통을 장려하기 위해 모든 금과 은을 몰수했다. 외국 상인들이 가져온 것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의 효율적인 화폐 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폐 유통이 어느 곳에서나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1294년 페르시아에서는 지폐의 강제유통으로 인해 상거래가 붕괴되었다. 중국에서도 15세기에는 지폐 유통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중앙은행총재 통화남발로 사형되기도**
유럽에서는 1661년 스웨덴에서 지폐가 처음 발행되었다. 스톡홀름 은행의 요한 팜스트루흐 총재는 통화남발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694년 영란은행이 설립된 것도 지폐 발행을 위한 목적이 컸다. 이후 영란은행은 세계에서 은행권을 지속적으로 발행한 가장 오래된 은행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지폐 발행은 재난을 초래했다. 프랑스 경제 재건을 위해 1716년 지폐 발행에 나선 존 로는 역사상 유명한 ‘미시시피 버블’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왕실의 빚을 갚기 위해 미국의 금광 개발을 명목으로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했지만 엄청난 주식을 발행한 끝에 프랑스가 보유한 금과 은의 두 배에 이르는 통화남발을 자행함으로써 해외로 추방되었다.
이 충격적인 역사로 인해 1790년까지 프랑스에서는 지폐 발행을 백안시했다. 지금까지도 프랑스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 유난히 금 보유량에 신경을 써서 지폐를 발행한다.
하지만 지폐의 본격적인 역사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상업은행의 역사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중앙은행의 역사는 영국에서 비롯됐다면 정부가 발행하는 지폐의 역사는 미국에 속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지폐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오늘날 1백달러짜리 지폐에 있는 인물이 바로 그다. 18세기 중반 로드 아일랜드 등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땅에서 극심한 통화남발이 일어나자 1764년 영국 본토에서는 미국내 모든 은행권 발행을 중단시켰다. 이것이 독립전쟁이 일어나게 된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후 독립전쟁 자금을 대기 위해서 미국땅에서는 전보다 더 많은 지폐가 남발되었다. 프랑스에서처럼 미국에서도 이런 쓰라린 경험 때문에 지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1789년 미국에서는 어느 주에서도 지폐를 발행하지 못하도록 헌법으로 규정할 정도였다.
1830년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중앙은행 설립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1913년까지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없었다. 남북 전쟁 기간에도 다시 통화팽창이 재연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리카르도가 1817년 <정치경제와 조세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한 격언을 따르지 못한 정부의 실패로 귀착된다.
"지폐의 태환가능 여부는 필수적 조건이 아니다. 그 양이 적절히 통제될 수 있어야 할 뿐이다."
***지폐의 역사는 곧 위조지폐의 역사**
사실 이제는 유럽중앙은행이나 유럽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지폐를 마구 찍어내리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위조지폐의 범람이란 문제는 유로 발행과 동시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위조지폐의 역사는 지폐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유로화의 디자인이 형편없다는 불만에 대해 유럽중앙은행은 "화폐발행자에게는 화폐의 미학보다는 위조방지가 앞선다"고 반박했다.
유로화의 위조방지를 위해 유럽중앙은행은 4가지 방법을 고안했다.
-워터마크와 위조방지선
-보다 정교한 7~8가지 특성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위조와 진짜를 구별하는 특징
-중앙은행 일부전문가만이 구별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다.
그러나 아무리 지폐를 정교하게 만들어도 위조를 피할 수는 없다. 독일이 만든 위조지폐와 진짜화폐와 구별하는 유일한 점은 위조지폐는 완벽하고 진짜 지폐는 결점투성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위조화폐 분석가인 피터 바우어는 위조의 정교성과 관계없이 전문가들이 고안한 위조방지요소를 정작 일반인들은 모른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라고 지적한다.
위조지폐는 종종 술집 같이 어두운 곳에서 사용된다. 바우어는 현재 서유럽에서 3% 정도가 위조지폐라고 추정한다. 게다가 이 수치는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머징마켓 유통 달러화의 30%가 위조지폐**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미국 달러의 경우 러시아, 동유럽, 아프리카 등지에 유통되는 달러의 30%가 위조지폐라고 바우어는 추정한다.
위조를 방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폐 위조는 점점 쉬어지고 있다. 컴퓨터와 컬러 프린팅 드럼 스캐너 덕에 복사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 것이다.
위조지폐를 방지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지폐로 사용되는 용지를 통제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은행권 조폐창인 영국의 포탈사는 1백50개국과 거래하고 있다. 1742년 이래 영국은행의 은행권 용지를 공급하는 이 회사는 지금까지 종이를 도난당한 적이 없다는 것을 자랑한다.
위조방지를 위한 또다른 방법은 디자인과 색상의 선택이다. 녹색은 복사하기에 가장 어려운 색으로 알려졌다.
3번째 방법은 지폐 자체를 자주 바꾸는 것이다. 은행권은 대체로 15~20년 정도의 주기로 교체되어 왔다. 요즘은 10년도 못가고 있다. 디자인은 더 자주 바뀐다. 새로운 단위의 지폐를 발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효과적이지 못할 때도 있다. 2000년 일본에서는 2천엔짜리 지폐를 7억7천만장을 찍었다가 6억장을 회수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액지폐는 동전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달러지폐에 대한 자부심의 대단한 미국에서도 현재 유통되고 있는 1백달러짜리 지폐는 예전보다 조금 커지고 프랭클린의 초상화를 중심에서 약간 이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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