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이 올해로 제정 1백주년을 맞았다. 오슬로의 노벨위원회는 1백주년을 기념해 지난 4일부터 오는 13일까지를 '노벨 위크(Nobel Week)'로 지정해 김대중대통령을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1백64명을 초청해 각종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알프레드 노벨 탄생 105주년이 되는 12월10일에는 올해 노벨상 시상식을 열 예정이기도 하다.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노벨상 1백주년을 맞아 노벨상이 지닌 권위와 한계, 21세기에 갖는 의미와 변화에 대한 전망을 다룬 '노벨의 세기(The Nobel century)'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노벨상에 대해 다룬 수많은 기사들 가운데 가장 객관적 정리를 하고 있는 기사라 판단돼 그 요지를 소개한다. 편집자
노벨상은 지적 사회에서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다. 그러나 그만큼 논란도 많은 상이다. 예를 들어보자. 헨리 키신저는 평화상을 받았는데, 간디는 받지 못했다. 처칠이 문학상을 받았는데 톨스토이는 받지 못했다. 이러니 심지어 큰 결함이 있는 영국 소설가 제프리 아처조차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측근에게 물어보았다 한다.
***노벨상은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는 '죽음의 키스'인가?**
노벨상에 대한 논란은 처음부터 있어왔다. 첫 번째 노벨 문학상이 톨스토이가 아닌 별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랑스 작가에게 수여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노벨상 수상은 수상자의 업적을 공인해준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도 업적을 낼 수 있다는 보증은 아니다. 노벨상은 수상자에게 ‘더 이상의 창조성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죽음의 키스'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부에서는 노벨상이란 전성기가 지난 사람들에게 갈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여성 수상자가 거의 없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심사위원들의 실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노벨상 후보 선정에 참여한다고 자부하지만, 최종결정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사람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인류의 최고 업적에 대해 심사할 능력이 있을까.
스웨덴 사람조차 "그들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르들"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노벨 평화상이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 같지 않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이 미얀마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노벨 평화상 수여로 독재정권하에서 보다 위험에 처해질 인물을 보호했다는 의미는 컸다.
***역사상 가장 큰 논란이 됐던 헨리 키신저의 평화상 수상**
그러나 헨리 키신저의 평화상 수상은 노벨상 역사상 가장 큰 논란이 되어왔다. 베트남 전쟁에 깊숙이 관여한 그에게 평화상이 돌아가자 1973년 당시 공동수상자였던 레 둑 토는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역사상 수상 거부자는 둘이다. 레 둑 토 외에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노벨상 수상이 독자들에게 작가의 책임을 흐리게 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중동과 북아일랜드 등 오랜 분쟁 지역에 연계된 인물들에게 평화상이 수여되면 늘 논란이 일었다.
야시르 아라파트, 시몬 페레스, 이츠하크 라빈이 1994년 평화상을 수상한 것도 논란이 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수상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상 선정위원장이었던 프란시스 세헤르스테드는 “평화상이 평화가 정착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수여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츠하크 라빈이 살해된 것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일을 무릅쓰고 평화를 위해 일했는지 보여준다"고 반박했다. 평화상이 평화로 가는 중요한 초석을 놓았거나 개인적인 용기를 발휘한 인물을 기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학상도 평화상 못지 않게 논란이 되어왔다. 역대 문학상 수상자 10명을 꼽아보라. 그러면 그에 대응해 그만큼의 억울한 비수상자 명단이 있다. 레오 톨스토이, 마르셀 푸르스트, 그레이엄 그린, 안톤 체홉, 제임스 조이스, 조셉 콘레드, 프란츠 카프카, 베르톨트 브레히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이 그들이다.
심지어 입센이나 스트린버그 등 노벨상 심사국에 속한 작가들도 상을 받지 못했다. 스트린버그는 "안티(Anti) 노벨상만이 내가 받고 싶은 상"이라면서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사위원들의 원어 능력 부재로 논란을 빚고 있는 문학상**
케임브리지대의 석학 조지 스타이너 교수는 “과학 분야는 나름대로 검증 기준이 있지만 문학상은 도무지 객관적 기준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스타이너 교수는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아카데미가 선정되지 못한 20세기 위대한 작가 명단을 작성해 그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그는 “위대한 문학은 시대적인 행운을 누릴 때나 인정받고, 심사위원들이 원어로 작품을 평가할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수상자인 중국의 가오 싱지옌에 대해서도 정치적 결정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스웨덴 아카데미의 종신위원인 호라스 엥달은 “정치적 의도는 결코 없다. 단지 정치적으로 해석될 뿐”이라고 항변했다.“노벨문학상이 문학 챔피언을 뽑는 게 아니다. 노벨상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을 인물을 찾아 내면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 분야도 논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특히 수상자들의 이론이 현실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발생한 경우에 그런 비판이 나왔다. 1997년 로버트 머턴과 마이론 숄즈는 옵션 가격결정이론으로 수상했지만 다음해 그들이 파트너로 일했던 헤지펀드회사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가 도산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은 원래 경제이론에 대해서 수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앨런 그린스펀이 왜 노벨 경제학상을 타지 못하느냐고 시비할 일은 아니다.
과학과 의학 분야는 평화상이나 문학상에 비해서는 비판이 덜한 편이다.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뢴트겐, 알렉산더 플레밍 등 받을만한 사람들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리스트에 있을 만한 인물 중에서 빠진 이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종종 거론된다.
이처럼 노벨상에 대해 논란이 많이 있지만 그 명성은 확고하다. 심사위원들이 대체로 올바른 결정을 해오지 않았다면 노벨상의 권위는 오늘날까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벨상은 20세기 전반보다는 후반에서 더 권위를 인정받았다. 스타이너 교수도 노벨 문학상이 폐지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노벨문학상은 복권 당첨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깨달으면 될 뿐"이라고 말한다.
***시대적 변화를 요구받는 노벨상**
그러나 노벨상도 20세기에서 변화를 겪은 것처럼 21세기에도 변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엥달은 드라마, 시, 소설 등에 집중되어온 기간을 지나 철학, 역사, 자서전 등도 문학상의 대상으로 주목받을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팩트 문학과 픽션 문학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학상 분야의 경우 더 큰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올해 92세의 조셉 로트블라드경은 1995년 그가 이끄는 퍼크워시 재단과 함께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그는 노벨과학상이 분야별로 3명 이상 수상자를 낼 수 있도록 하고 단체 수상도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단체수상이 가능한 것은 평화상뿐이다.
그는 “과학자들은 수십명에서 1백여명에 이르는 팀으로 일한다. 그중에서 어떻게 한 두 사람을 수상자로 고를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노벨상 심사 관계자들은 변화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노벨상은 인간의 역할에 대한 보루다. 기계와 집단이 주도하는 시대에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환경 등 새로운 분야에 노벨상을 신설하자는 제안도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러나 추가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노벨 재단의 미카엘 졸만 이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우리가 간직해온 전통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노벨상은 그 존재 의의가 더욱 커졌다. 노벨상은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납득하는 방식으로 혼란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버턴 펠드먼은 “모든 기준이 공격을 받는 시대에 노벨상은 권위와 구심점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올해의 수상자 선정도 과거처럼 논란이 따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벨상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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