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를 선두로 홍콩, 태국,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의 영화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부문에서 가장 먼저 ‘아시아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그동안 아시아를 지배해왔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신화가 깨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현상으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홍콩의 경제주간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는 아시아에서 자국영화들이 할리우드 영화들을 몰아내고 성공을 이뤄내고 있는 상황을 한국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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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들은 90년대초까지만 해도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아 상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쥬라기 공원’과 ‘터미네이터 2’ 같은 미국영화들의 상업성에 밀려 자국에서조차 예술극장 등에 제한적으로 배급, 상영되는 수모를 받는 처지였다. 특히 할리우드의 97년작 ‘타이타닉’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국영화가 1위를 차지하던 홍콩시장에서까지 할리우드영화의 점유율을 52%로 끌어올리는데 선봉이 됐다.
***한국을 필두로 일본,홍콩,태국의 자국영화가 흥행 최고기록 속속 수립**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최근 몇 년간 서울에서 도쿄,방콕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각국의 자국영화가 흥행신기록을 세우며 대역전되기 시작했다. ‘미이라 2’를 제외하고는 최근 아시아 영화계의 박스오피스를 지배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더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한 예로 ‘조폭 마누라’와 ‘무사’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한국에서 편당 5백만달러의 수익을 내는 동안에, 미국 할리우드의 흥행작들은 편당 겨우 2백만달러 정도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최근 한국에서 개봉된 할리우드 스타 덴젤 워싱턴 주연의 ‘트레이닝 데이스’는 액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참패한 경우로 2주간 50만달러의 저조한 흥행을 기록한 반면, 코미디물인 ‘달마야 놀자’는 그 10배의 수익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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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도 시대극인 ‘수리요타이’가 5억바트(1천1백만 달러)를 벌어들여 최고 흥행기록을 갱신했다.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극장용 만화영화 ‘센과 이치로의 행방불명’이 26억엔(2억1천7백만달러)의 흥행실적을 기록, ‘타이타닉’이 지니고 있던 일본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탈환했다.
가장 극적인 경우는 홍콩으로 1997년 ‘타이타닉’에 흥행 1위를 빼앗긴 후 해적판 영상물과 영화계의 두뇌유출, 그리고 날림제작으로 침체기에 있다가 최근 들어 3년간 제작한 ‘소림축구’등의 잇단 성공으로 흥행작 상위 5편중 4편이 자국영화로 채워졌다.
성룡의 경우는 최근 아시아영화 흥행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가 오랜 파트너인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사와 한국, 홍콩 등지에서 촬영한 ‘액시덴탈 스파이’는 흥행 4위에 올랐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찍은 ‘러시아워 2’는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서로 투자하고 배급하는등 '아시아의 연대' 본격 진행**
이런 아시아에서의 자국영화강세는 서구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젊은 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할리우드가 만들기 힘든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로 자국영화산업의 재기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흥행성공은 점차 큰 규모의 투자로 이어져 ‘무사’의 경우 8백만달러(1백억원)라는 기록적인 제작비가 투입됐고, 태국도 영화제작비가 평균2천5백만바트에서 4천만바트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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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적 측면에서도 아시아 영화는 이제 한국영화가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에 배급.상영되는가 하면, 홍콩 제작사들이 태국영화에 투자하는 등 ‘아시아의 연대’가 점차 진행되고 있다.
이같은 아시아 영화산업의 대약진에 대해 할리우드는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 배급사는 아시아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아직 큰 동요가 없으며 아시아시장은 미국 매표수익의 4분의 1정도 규모에 불과해 배급과 마케팅 투자만으로 순수익을 챙기는 보너스시장”이라고 드림웍스의 아시아 배급을 맡고 있는 캐서린 박은 말했다.
그러나 내심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폭력과 피가 범람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9.11테러 이후 테러범들에게 폭력영화가 영향을 줬다는 질타를 받았고 그전처럼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기는 힘든 환경에 직면했다. 또 할리우드 액션물은 할리우드가 결코 각 나라 관객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그 나라 고유의 로맨틱 코미디와 드라마에게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초긴장, 아시아 시장 공략전술 전면 전환**
이렇듯 아시아 영화가 강세를 보이자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아시아지역 공략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콜럼비아사는 98년 홍콩에 제작소를 직접 설립해 지난해에는 ‘와호장룡’의 세계적인 흥행을 이뤄냈다. 워너사는 전통대로 각국에 영화의 제작 분업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미라막스는 미국내에서 독립영화를 사들이고 배급했듯이 아시아영화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버라이어티지의 아시아 편집국장 돈 그로브는 “영화사들이 아시아에서 그 지역 고유 언어로 더 많은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이 지역 영화산업의 장래에 대한 낙관”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요즘 아시아 영화의 강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올 겨울 불어닥칠 ‘해리 포터’ 흥행 열풍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그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한국영화들과 힘겹게 싸워야 할 것”이라고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의 한국홍보담당 심영신씨는 내심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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