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기관들이 연말을 맞아 마치 경쟁이라도 벌이듯 직원들을 무더기 감원하고 있다.
이같은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감원은 실물경기에서 초래된 불황이 1차로 기업 도산을 낳고, 그 뒤를 이어 부실여신이 늘어나면서 금융기관 부실화로 이어지는 불길한 징후가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현재 미금융기관들의 감원률은 평균 5% 수준이나, 경기가 더욱 나빠질 경우 금명간 13~15%대로 크게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장 대규모로 감원을 추진중인 금융기관은 미국 최대금융그룹인 시티그룹이다.
지난 5월18일 1백25억달러의 거액을 들여 멕시코 2위은행 바나멕스 그룹의 지분 100%를 인수했던 시티그룹은 불과 반년만인 지난 15일 비용절감을 위해 연내에 7천8백개의 일자리를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시티그룹은 감원에 따른 위로금 지급 등으로 1억4천5백만 달러가 소요돼 3분기 수익이 줄어들게 됐다고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보고했다.
지난달 "바나멕스에서 2천7백개, 기존 시티그룹에서 2천개의 일자리를 감원한다"고 발표했던 시티그룹은 그후 경기가 더욱 나빠지자, 바나멕스에서 3천6백개와 기존 시티그룹에서 4천2백개 등 당초 계획보다 두배 가까이 많은 7천8백개의 일자리를 없애기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예정대로 7천8백개의 일자리를 연내에 없앨 경우 시티그룹은 올해 들어서만 1만2천개의 일자리를 없애는 셈이다.
시티그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추가로 3천5백명 정도를 추가 감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시티그룹의 방침은 당연히 멕시코 바나멕스 직원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시티그룹에 인수될 당시 바나멕스 직원숫자는 2만7천명. 시티그룹에 인수되면 어느 정도 감원은 불가피하다고 각오했으나 이 정도까지 감원 폭이 커질 줄은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시티그룹이 바나멕스를 인수할 때만 해도 시티그룹은 바나멕스 시가총액의 43%를 프레미엄으로 얹어줄 정도로, 멕시코 은행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바나멕스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초우량은행'이었던 탓이다.
시티그룹이 바나멕스를 인수한 것은 멕시코 경기가 견조한 회복세를 보여 멕시코 은행시장의 영업전망이 밝은 것외에, 미국내 멕시코 출신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에서였다. 미국내 히스패닉 인구는 지난 90년에서 지난해까지 10년 사이에 58%나 증가했다. 반면에 미국의 전체인구는 이 기간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바나멕스 인수후 미국 경기가 급랭하자 서둘러 대규모 감원에 나선 것이다.
바나멕스 직원들은 "프레미엄을 주고 사들일 때는 언제고, 경기가 나빠지자 불평등하게 바나멕스 직원들을 중심으로 무더기 해고를 하는 것은 무슨 처사냐"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1위 금융그룹인 시티그룹이 이렇게 몰아치자, 미국내 2위 금융그룹인 JP모건 체이스 그룹도 뒤질세라 7천5백개의 일자리를 올해말까지 정리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미국 최대 신용카드회사인 아멕스 역시 연내에 4천~5천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아멕스는 이미 상반기에 1천6백명을 해고했었다.
증권업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미국내 증권사들 역시 금년내에 2만6천명 이상을 해고할 방침이다.
증권사들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감원정책을 취하고 있는 곳은 메릴린치로, 연내에 2천6백명을 추가감원하겠다고 밝혔다. 메릴린치는 이로써 지난해 3.4분기 이후 9천4백명을 감원, 전체직원의 13%를 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월가의 작년말 대비 해고율은 평균 5% 정도에 멈추고 있으나,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경우 해고율이 13~15%까지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월가에 10여년만에 또다시 '동토(凍土)의 계절'이 도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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