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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신외교, 언론은 책임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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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신외교, 언론은 책임없나

현지 모니터링 소홀, 사후 비판 열올려

주중대사관의 ‘망신외교’를 비판하는 세간 여론이 뜨겁다. 특히 언론은 연일 이를 대서특필하며 위로는 장관에서부터 밑으로는 일선 실무진에 이르기까지 외교부의 전면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한 신문은 지난 5일 ‘현지 신문도 안 보는 주중 영사관’이라는 제목의 발굴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요지인즉 “중국내 동포신문인 흑룡강신문이 신아무개씨 등의 마약 사건을 3년동안 4차례에 걸쳐 크게 보도했으나 주중 한국 영사관은 그간 이런 보도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었다. 이 신문은 그 증거로 지난 98년 11월26일자, 올해 3월7일자, 3월8일자, 9월26일자 흑룡강신문의 관련 기사를 사진과 함께 예시했다.

외교부의 한심스런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사건이자 기사였다.

***과연 한국언론은 중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문제는 그러나 이번 사건의 책임이 과연 정부에게만 있는가이다. 우리 언론은 중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도 함께 반성해볼 대목은 아닐까.

우리나라 주요언론사들은 중국 베이징 등지에 특파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특파원의 주요업무중 하나가 해당국의 ‘언론 모니터링’이다. 특파원이 일일이 현장을 찾아다니기에는 파견인력이 너무 적고 본사로부터의 지원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특파원들은 상주지역의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를 모니터링해, 이 가운데 우리나라와 연관이 깊은 기사들부터 우선적으로 국내에 타전하곤 한다.

이런 전후 맥락에서 볼 때 “동포언론인 흑룡강신문이 지난 3년 동안 4차례에 걸쳐 대서특필했으나 이런 보도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직무유기 책임은 주중영사관뿐 아니라, 국내언론에게도 함께 있다 해도 무리한 지적이 아닐 것이다.

이 사실을 보도한 신문사 또한 사건이 문제화된 후 뒤늦게 중국언론들을 모니터링한 결과, 그 신문의 표현을 빌면 “발행부수 5만부로 동포신문 가운데 유력 일간지인 흑룡강신문”에 이같은 사실이 4차례나 보도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수많은 베이징 특파원 중 한명이라도 흑룡강신문의 보도사실을 제때 모니터링해 이를 미리 기사화했다면 과연 외교부가 수수방관하고 있었을까. 국내언론 또한 직무유기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대목일 것이다.

우리 언론은 그동안 “남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힐난을 받아왔다. 어떤 정치인은 언론을 ‘하이에나’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권력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할 때에는 ‘침묵’ 또는 권력에 ‘유착’했다가, 권력이 힘을 잃으면 하이에나 무리처럼 달라붙어 권력의 과거 비리를 생체해부해온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역사 때문이다. 일각에서 “망신외교 보도의 저변에도 과거와 유사한 언론의 책임 떠넘기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인과응보다.

***주한 미대사관은 현재 80여명의 언론 모니터링 인력을 고용중**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대안’ 마련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중대사관이나 특파원들은 현지언론에 대한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할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13억 인구가 사는 방대한 대륙을 한줌밖에 안되는 외교인력이나 특파원들만 갖고서 모니터링한다는 것은 애당초 너무나 한계가 뚜렷한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일까.

주한 미국대사관은 이에 관련, 한 가지 해법을 암시해주고 있다.
현재 주한 미국대사관에는 한국언론의 보도내용을 모니터링해 이를 영문으로 옮기는 일을 맡고 있는 인력이 8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가능한 한 원문의 뉘앙스가 그대로 살아있도록 번역할 것”을 주문받고 있다 한다. 이렇게 영역된 내용은 미국 본토의 국무부 등 유관부처 및 주한 미국계기업으로 보내진다. 그 대가로 미대사관은 이같은 서비스를 받는 민간기업들로부터 일정 비용을 받고 있다 한다.

현재 중국에는 이미 수만여개의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진출하려는 기업들도 즐비하다. 이들은 중국에 대한 ‘정보’를 갈구하고 있다. 만약 주중 한국대사관이 현재 주한 미국대사관이 하고 있듯, 우리말과 중국어에 능통한 현지인력들을 수십여명 고용해 이들로 하여금 중국 언론을 샅샅이 모니터링해 번역케 한 뒤 그 내용을 민간기업들에게 제공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진출기업들은 이들 현지인력의 고용유지에 필요한 대사관의 경비 정도는 기꺼이 제공할 것임에 틀림없다.

***민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부와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야**

몇 해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취재 갔을 때 목격했던 일이다. 당시 남아공에는 국내상사의 지사가 불과 여섯 개 상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빼먹지 않고 이들이 하는 주요업무중 하나는 남아공 주요언론의 기사 모니터링이었다. 이들은 주요기사를 스크랩해 이를 본국으로 전송하곤 했다.
이처럼 민간부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부나 언론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정보를 수집, 분석해왔다.

정부와 언론은 이번 ‘망신외교’ 파동을 철저한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대안 마련에 부심해야 할 것이다.
대안은 의외로 지극히 간단한 데 있다. 민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부와 언론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군림하려는 자세에서 봉사하려는 자세로의 전환. 이것이 우리 정부와 언론이 당면한 최대 현안이자, 가장 쉬운 문제해결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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