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은 지난 9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며 '인도주의' 차원에서 아프간 주민에 대한 식량과 의약품도 공중 투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구호단체들은 미국의 이런 조치를 ‘선전도구에 불과한 쇼'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민간 국제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MSF)는 9일 “미국과 영국이 공중투하하는 식량과 의료품이 아프간인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79년부터 아프간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MSF에 따르면, 이번에 공중투하된 3만7천5백개의 레이션은 정작 아프간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양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정작 필요한 것은 대규모의 생필품 수송인데, 아프가니스탄에 식품을 운송해오던 유엔과 국제구호기관들이 공습으로 인해 모든 수송을 중단했으며 구호도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파키스탄 지역에 있는 MSF의 장 에르베 브라돌 회장은 “의료구호행위는 비행기로 의료품을 투하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며 “적절한 의료진이 동반되지 않은 의료품 투하는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중투하를 밤에 하는 것도 그나마 누가 가져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번 작전에 관계한 미국 관리들도 “이 식품들이 엉뚱한 곳에 갈 수 있기에 식료품 공중투하는 아프간 주민들에게 영양을 제공한다는 물질적 효과만큼 심리적 가치도 중요하다”며 ‘선전적 효과’를 노린 것임을 간접시인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도 9일 세계적으로 지뢰가 많이 매설된 아프가니스탄에 식량을 공중투하를 한다는 것은 ‘하루 먹거리를 위해 지뢰밭에서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련은 지난 79년 아프간 침공 이후 지뢰를 대량 매설해 현재 1천만개가 넘는 지뢰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아프간 난민들은 투하된 식품을 수거하려다가 지뢰폭발로 죽을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는 “평상시에도 아프간내에서는 하루 10~15건의 지뢰폭발 사고가 일어난다”며 “소련이 매설한 지뢰가 아프가니스탄 중앙고원지대와 파키스탄 국경 부근에 집중 투하되었는데 미국 또한 같은 곳에 식량을 투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미국이 투하한 레이션은 개당 2천3백칼로리의 열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품으로, 겉에는 '미합중국 국민들이 보내는 식량 선물'이라고 적혀 있다. 내용물은 토마토소스로 버무린 콩, 땅콩 버터, 딸기잼, 과일 등이며, 독일의 람스타인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12대의 C-37수송기로 투하됐다. 하지만 C-37 수송기가 미사일을 피해 고도를 높이 유지한 채 공중 투하해 넓은 지역에 흩어지고 정작 필요한 이에게는 도달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방식의 식료품 공중투하는 진정한 목적을 의심케 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개발청의 파키스탄 주재관인 루돌프 하게도 스위스국제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영국의 공습으로 식량보급에 차질이 빚어져 다가오는 겨울철에 수백만명의 아프간인들이 기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수석 대변인 스테파니 벙크도 “구호물자가 하루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되길 바란다. 난민들은 하루 아침에 죽는 게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하루 늦으면 그만큼 또 죽어나간다. 전인구 3분의 1이 넘는 8백만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굶고 있으며 이번 겨울에 식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루돌프 하게 역시 미·영의 공습 이후 필수적인 식량공급이 불가능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4∼6주 안에 눈이 내리게 되면 외딴 지역에 식량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6백만∼7백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게 될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5만톤의 밀가루를 아프간 산악지역에 보내려는유엔 세계식량기구(WFP)는 그동안 미국의 공습 때문에 수송작전을 중단했다가 지난 주 재개했으나 실제 공습이 시작되면서 또다시 중단한 상태다.
전시효과만 노린 식량 공중투하로 현재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는 아프간 난민들은 다가오는 겨울에 오갈 데 없이 추위와 배고픔에 죽음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게 현재 아프간의 참혹한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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