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의 반란(?)**
월가 등 금융시장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조지 W. 부시 미국정부의 친(親)군수산업적 ‘장기전’ 전략이 밑둥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시 정부의 이같은 동요는 앞으로 전개될 전쟁 양상이 월남전 같은 장기전보다는 걸프전류의 단기전에 가까울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어, 위기의 세계경제에 한 가닥 희망을 품게 하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3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현 시점에 우리가 거대한 규모의 전쟁(large-scale war)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은 걸프전보다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발언도 덧붙였다.
파월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이틀 전인 21일 부시 대통령의 발언과 자못 상반되는 뉘앙스의 발언이다. 부시는 상,하원 합동의원연설에서 “미국인 단 한사람의 목숨도 희생되지 않은 코소보 전쟁(1999년)과 같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미국편에 설지, 테러편에 설지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패닉 상태에 휩싸인 월가**
월가 등 국제금융시장은 이날 부시의 발언을 ‘미군의 인명 피해를 감수한 지상군 투입까지 포함하는 월남전식 장기전’의 전조로 해석했다. 그 결과 이날 시장은 ‘패닉(공황)’ 상태에 빠져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월가를 비롯한 세계금융시장에는 ‘패닉(공황)’ 분위기가 짙게 감돌았다.
당연히 월가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왔다.미국의 간판급 투자은행중 하나인 메릴린치의 투자분석가 푸람 션드리는 22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우리 생각보다 길어질지에 대해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금명간 다우지수가 10~15% 정도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뉴욕의 경제학회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HFE)의 수석경제학자 칼 와인버그는 “이 시점에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동물적 감각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전에 대한 불안이 시장을 패닉상태로 몰아가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부시정권내 ‘매파’와 ‘비둘기파’간 대립**
이렇듯 시장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부시정부 내에서도 분열이 생겨났다.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부시정부는 기본적으로 친군수산업적 색채가 강한 정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 더 나아가선 집권여당인 공화당의 정치적 뿌리가 군수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 정권인 클린턴 민주당정부가 월가 및 정보산업(IT)업체와 지근거리에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대목이다.
그러나 부시정부 내에도 ‘매파’와 ‘비둘기파’는 있다. 매파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국방부, 반면에 비둘기파는 파월 장관을 필두로 하는 국무부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은 정권 출범초기부터 적잖은 물밑 갈등을 빚어왔다. 한 예로 대(對)북한 정책을 둘러싸고도 파월 장관이 대화정책을 선호한 반면, 럼스펠드 장관은 힘의 우위에 의한 정책을 주장했다. 이럴 때마다 부시대통령이 매파쪽 손을 들어주었고, 미 정부내에서 상대적으로 비둘기파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9.11테러 발발직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항공기 테러를 당한 국방부는 초토화전을 주장했고, 영국 권위지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영국정부와 함께 ‘10년 전쟁’을 기획하기도 했다. 노골적인 장기전 플랜이었다. 그러나 파월장관을 필두로 한 국무부는 ‘짧고 굵은 전쟁’을 선호했다. 파월장관은 ‘걸프전의 영웅’답게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야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위상이 높아짐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플러스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생체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11사태 발발 직후 미국을 강타한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 열풍에 밀려 파월의 발언은 먹혀들어갈 수 없었다.
***월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한 비둘기파**
이러던 중 테러 사태 이후 폐장됐던 뉴욕증시가 지난 17일 문을 열자 주가는 내리 닷새째 곤두박질쳤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의 재정적자가 늘어날 것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미국 채권과 주식, 자산을 내다팔고 미국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월가는 세계대공황 발발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장기전을 도모하는 부시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23일 파월 국무장관의 ‘단기전’ 선호 발언은 이같은 ‘월가의 반란’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경제의 신권력인 금융자본과 구권력인 군수자본간의 힘겨루기에서 금융자본이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증거로 풀이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가는 아직 부시정부로부터 불안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의 돌출성과 즉흥성, 호전적 기질을 고려할 때 과연 파월장관으로 상징되는 비둘기파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인 탓이다.
ABN 암로의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매소 위킨스는 IHT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면 미국과의 무역량이 큰 한국, 멕시코, 브라질이 어떤 나라들보다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가 미국의 매파와 비둘기파간 역학 변동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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