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철 논란 ① 박원순, '민자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나 |
서원동(옛 신림본동)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는 직장인 A 씨. 오전 8시 무렵 집을 나선 뒤 천주교 서원동 성당(문화교) 앞에서 여의도행 버스를 기다린다. 신림역까지 나가면 버스가 많지만, 여의도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는 6513번, 딱 한 대가 운영되고 있다. 출퇴근길에는 45분가량 걸리지만, 출퇴근 시간만 벗어나면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출근길 버스는 항상 만원이다. 버스 탑승구에 있는 계단까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찼다. 두세 대를 보낸 후 간신히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신림까지 뻗어 있는 도림천. 이곳에 경전철이 들어서면 매일 아침 출근길 '버스 전쟁' 사정이 좀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시는 지난달 24일 신림선, 동북선, 면목선, 서부선, 우이-신설 연장선, 목동선, 난곡선, 위례-신사선, 위례선 경전철과 지하철 9호선 연장(보훈병원~고덕강일1지구) 등 총 10개 노선 건설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총 사업비는 약 8조5500억 원. 국비 1조1700억 원과 시비 3조500억 원을 들이고 민간에서 4조2000억 원가량 끌어들인다. 이른바 '민자 사업'이다.
서울시의 경전철 추진 방안과 관련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프레시안>은 6일 서울시가 발표한 용역 결과 비용 편익이 가장 높게 나온 신림선(1.16, 비용 편익 1을 넘기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과 대표적인 '교통 소외 지역'으로 꼽히는 난곡선 건설 예정 지역을 찾았다.
[신림선] "우리의 숙원인 신림선 확정!" -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오전 출근길, 서원동 문화교 앞에는 "우리의 숙원인 신림선 경전철 사업 확정!"이라는 '경축' 문구가 들어간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전국고시원협회, 신림선 경전철 조기 착공 비상대책위원회 등에서 내건 것이다.
신림선 경전철 추진의 역사는 꽤 된다. 지난 2006년 3월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는 여의도~신림 간 경전철 민간 제안 사업을 접수했다. 이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7년 경전철 설명회와 주민 설명회 등을 열어 주민 의사를 수렴했다. 서울시는 이후 2008년 도시철도기본계획을 발표해 신림선 경전철 추진 방침을 밝히게 된다. 옛 신림동(1동에서 13동까지) 상주 인구가 2011년 기준으로 약 29만 명에 달하는 점 등은 경전철 추진의 주요 근거가 됐다.
그러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우이동 경전철이 먼저 삽을 뜬 것과 비교가 됐다. 이 때문에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신림선 경전철은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앞다퉈 조속한 추진을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관악구청장 후보로 출마한 오신환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장과 '경전철(신림선) 관악 발전 플랜'이라는 책자를 들고 사진을 찍어 선거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신림선 ⓒ서울시 |
서 씨는 이어 "전철역을 보면, 관악구 쪽은 2호선이 지나가고 가까운 전철로 신대방 쪽에 7호선이 있지만, 두 노선 모두 횡으로 지나간다. 종단 노선이 없다"며 "이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공기가 좋을 리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옛 신림동에는 아파트 단지도 많고 유동 인구도 많기 때문에 경전철이 꼭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기왕이면 서울대 정문에서 2호선 서울대입구역까지 연장되면 좋겠는데, 이번에 발표된 내용에는 없더라"라고 말했다.
물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주민도 있다. 서원동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한규(가명) 씨는 "집값이 올라 집 있는 사람들은 조금 신이 날까"라고 반문하며 물음표를 던졌다. 그는 "서울대 다니는 학생들이나 직장인에게는 좋을 거 같은데, 그 외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며 "경전철이 생기든 안 생기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히려 경전철에 사람이 몰려서, 안 그래도 복잡한 신림역 같은 곳이 더 복잡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출근길에서 만난 주영수(가명) 씨는 "경전철이 생긴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이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면서도 "역사 같은 것을 크게 짓고, 역세권 개발을 대대적으로 부추기는 식의 토목 사업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형적인 역사를 만들어 괜히 동네 미관이나 해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는 이야기다.
[난곡선] "교통 편해질 것" - "세금으로 엉뚱한 일 하는 것 아닌지…"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난곡선은 신림선과 보라매공원에서 만나게 된다. 난곡선과 만난 신림선은 여의도 샛강역까지 뻗어나간다. 총 8.92Km에 11개 역 규모의 신림선은 2호선 신림역, 7호선 보라매역, 1호선 대방역, 9호선 샛강역에서 환승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함께 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6호선 새절역을 잇는 또 다른 경전철인 서부선으로 환승하는 것도 가능하다. 난곡선은 난향에서 신대방까지 5개 역으로 총 4.13Km이다. 2호선 신대방역과 환승이 가능하고, 이후 노선은 신림선과 연결된다.
▲ 난곡선 ⓒ서울시 |
원래 난곡길 확장은 궤도 교통 수단 신설과 관련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가 거기 살아봤죠"라며 서울시장 시절 꺼낸 이슈가 난곡선 GRT(Guided Rapid Transit, 유도 고속 차량) 도입이었다. 즉 도로상의 일정 노선을 확보한 후 자기장 등 차량 유도 장치를 설치해 버스 형태의 차량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경전철과 버스의 중간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계획은 경제성 문제로 백지화됐는데, 백지화 이후 건설 비용이 더 드는 경전철이 추진되고 있는 희한한 상황이다. 이 대목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곳 주민들도 경전철 도입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난곡동 보성운수 종점 인근에서 만난 김상길(가명) 씨는 "경전철이 들어오면 여러모로 교통이 편해지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이 지역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박민혁(가명) 씨는 "난곡은 원래 천이 흐르는 곳을 덮어 길로 만든 곳인데, 경전철 공사를 하면 돈이 더 많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버스 노선도 잘돼 있는데 경전철이 들어오면 좋아할 사람들은 집 가진 사람들뿐 아니겠냐"라며 "타당성도 없다는데, 세금으로 엉뚱한 일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경전철과 관련해 비교적 오랫동안 추진 상황을 지켜본 옛 신림동과 난곡 지역 등에서도 여전히 '환영'과 '우려'는 교차하고 있었다.
▲ 서원동 문화교에 경전철 사업 확정을 축하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 너머로 경전철이 들어서게 될 도림천이 보인다. ⓒ프레시안(박세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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